H그룹의 Y부장은 한숨으로 올해를 시작했다.

회사의 팀제 도입으로 부장승진 1년만에 다시 "평사원"으로 전락했기
때문.

동료부장이 팀장으로 오면서 그는 이제 어제의 동료에게 결재서류를
올려야하는 신세가 됐다.

관리자로서의 "파워"를 맛보기도 전에 명함에서 "<><>부장"이라는 말을
지워야 했던 그는 "차라리 차장시절이 나았다"며 "10년 넘도록 묵묵히
일해온 사람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건지 회사가 원망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단 Y부장의 얘기만은 아니다.

팀제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라고나 할까.

팀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중 하나다.

"팀제는 결재단계를 줄여 조직을 활성화하는데 분명 효과가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팀제를 도입함으로써 조직을 슬림화하고 분위기를
일신했다.

하지만 팀제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전준비 없이 도입
함으로써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이준호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조직전략실장)

LG경제연구원이 매출액 순위 1천대 기업중 3백개 기업을 뽑아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기업의 76%가 팀제를 실시했었거나 실시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팀제는 이제 기업의 직제로 자리를 굳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팀제의 성과에 대해선 55%가 기대에 못미쳤다고 대답했다.

3%는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대동은행 처럼 팀제를 다시 대부제로 바꾼 곳도 있다.

팀제의 도입열풍에 비해 결실은 이렇듯 풍성하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LG경제연구원의 정일재연구위원은 <>중간관리자들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의 의식개혁 <>팀장의 능력과 리더십 <>팀장의 권한과 팀평가방식
등 제도적 장치 <>커뮤니케이션 등의 미비에 원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Y부장과 같이 간부사원들을 내보내기위해 팀제를 도입한게 아닌가하고
회사를 "원망"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임직원들이 의식개혁이 이루어지
않은 상태에서 팀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기업들이 잇달아 팀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층층히
결재를 받아야하는 자리중심의 낡은 시스템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데 있다.

또 부.차.과장으로 직급은 올려주되 직책은 주지않는 식으로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에 따른 인사적체를 해소키위해 팀제를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자리중심"에서 "일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직급은 살리되
직책은 파괴하자는게 팀제의 요체이자 목적이나 하드웨어만 바뀌고
소프트웨어가 변하지않아 팀제가 제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실제로 도입 1년여만에 팀제를 폐지한 대동은행의 김민기 서울분실장은
"결재단계 자체는 1~2개 줄었으나 팀수가 많아 실제 의사결정은 부.과제
시절보다 더 늦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대동은행과 같은 역효과외에 팀간 업무협조의 미비와 팀장의 리더십,
그리고 기존 간부사원들의 사기저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도
적지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계에 여러개의 소팀을 하나로 묶는 대팀제가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무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수평조직간 업무협의 속도가 떨어지는 취약점을
보완키위한 것으로 대우건설의 경우 올해초 주택사업본부내 25개팀을
9개팀으로 줄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주택사업본부내 2~3개 관련팀을 한데 묶어 기존
15개 소팀을 8개 대팀으로 바꾸었다.

두산은 그룹전체를 대팀제로 재편했다.

두산그룹의 김명우인사팀과장은 "소팀제는 기존 과제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대팀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업무성격상 소팀제가 대팀제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다.

신규사업을 준비할 때는 프로젝트별로 별도의 팀을 구성하는게 바람직
하다는 지적도 있다.

팀제에 관한한 "이것이다" 하고 정형화된 시스템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팀제는 업무의 성격과 회사내의 분위기, 그리고 중견간부들의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사의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야 팀제도 제기능을 발휘할 수있다.

물론 여기에는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전제돼야한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팀제가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팀제를 경영혁신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야지 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태 포철기조실 인사팀장)

< 장진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