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재단이 7일로 1백주를 맞은 독립신문 창간호의 복사본을 찍어
전언론인에게 배포했다.

선거에 40회 신문의날까지 포개 1석3조를 계산했으리라.

그게 사실이다.

"첫째 우리는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 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하는 사시는 고문투이면서
현대 감각이다.

4.11선거의 언론 역할은 제대로냐, 민주시민 자질은 갖췄느냐고 채근하는
서재필의 음성이 들릴 것 같다.

그리도 감격스럽던 48년의 5.10총선, 동란 한달전 소앙-유석 대결의 5.30
선거, 4.19불씨가 된 3.15, 3공 탄생의 11.23등 역대 모든 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하고 취재하면서 쌓아 올리던 신념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요즘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선거가 나아지리라던 희망이 비관쪽으로 급전직하하는
이유를 몇마디로 설명하긴 벅차다.

그러나 한가지,밤을 도와 들어앉는 야도정권이 이 땅에서 사라질 때 선거
공명은 절로 오리라던 기대는 상식선이었다.

정당치 못한 정권은 정당한 방법으로 표를 딸수 없다는 간단한 논리에서
였다.

그래서 94년말 통합선거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을 때 우레같은 찬사가
쏟아졌다.

실제로 직후에 실시된 3개 지역 보선은 돈 덜 쓰는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웬만한 미비점은 있었어도 이내 보완되리라고 낙관했다.

한데 총선을 멀찍이 앞둔 95년 하반서부터 한국 정치의 떡잎은 이미
싹수가 노랬다.

이합집산의 구태가 되살아나고 한술 더 떴다.

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국민회의 창당, 자민련 파생과 민자당의 변신 이래
소위 문민시대의 정치행태는 무단 정치에만 몽땅 원인을 돌렸던 구악에서
무엇하나 나아진게 없었다.

민주주의는 대의정치고 대의정치는 공명선거 그 자체다.

그럼 공명선거란 무언가.

짧게 줄이면 선거란 더 이상 쓸모없는 자를 투표로 가차없이 몰아내는
유권자들의 권리행사다.

그런데 떳떳지 못한 공천, 당수와의 연고, 돈 패대기질 등 선거라는 채에
갖가지 틈새가 뚫린 채로 있어서 그리로 미꾸라지들이 침투하는가 하면
거꾸로 온갖 흉칙한 짓이면 도맡아 하던 뻔뻔스런 구악들은 쫓겨나지 않고
더 큰 소리치며 버티니 문민 시대란 도대체 무언가.

그럼 이젠 공명선거 희망을 어디다 걸 것인가.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닌가.

그렇진 않다.

다만 희망을 걸 곳은 어느 타인이 아니다.

유권자 모두의 나 자신이고 이 사회 자체라고 보아야 한다.

첫째 절반이상의 잘못은 비뚤게 인식된 깡패적 의리에 연유한다.

의리는 입은 은혜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갚는 보은으로서 미덕일수 있다.

농경-신분 사회를 떠받친 척추였다.

따라서 그 배반에는 배신자란 깊은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산업-계약 사회에 들어와서 지배원리는 바뀌었다.

합리정신이다.

생활의 구도가 이치에 맞는 그런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계속 구사회의 의리를 금과옥조로 삼는다면 모든게
뒤틀린다.

더구나 선진화 경쟁력강화 세계화에는 합리-과학 정신의 체화가 요체다.

물론 보은은 악덕이 아니다.

신세를 졌으면 갚는 것은 의리일뿐 아니라 합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향 동창 친인척이란 인연이 바로 은혜를 주고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모든 연고는 우연의 소산일 뿐이지, 본인이 의식하고 선택해서 맺은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문중 동창 거주지 연줄을 의리로 붙들어 매는 어거지는 민주주의
의 적이다.

둘째 표의 금품 매매다.

일면으로 산업사회에 부합하는 합리적 측면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매매가의 효용으로 따지면 표값은 비등가여서 합리가 아니며 더욱
그것은 국가에 유해해 법으로 처벌하는 범범행위이다.

한표에 혹 몇 백만원이라면 모르되 잘해야 몇 만-몇 십만원에 인격을
판다면 양심의 가책 대가로 모자라니 합리라 할수도 없다.

뭣보다 표를 돈받고 파는 행위는 나라를 모리배의 사유물로 만드는 결과
라고 볼때 자손을 노예로 파는 자승자박인 셈이다.

셋째 답답한 것은 지자제 실시에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지역개발책으로
간주하는 도도한 추세다.

국회의원은 선거민을 대표하되 지역살림이 아니라 국사를 논하는 자리라는
원론이 어디서도 망각돼 있을 뿐더러 정부-여당이 오히려 한술 더뜨니
망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넷째 투표일을 바짝 앞두고 심상찮게 가팔라지는 북한의 동향이 선거에
끼칠 영향이다.

"반도내서 전쟁이 난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그 시기만 남았다"는 인민위
의장 양형섭의 발언은 "북한체제 붕괴는 시기와 방법만 남았다"는 럭 장군의
말투를 빼 닮았다.

거기에 단서가 있을것 같다.

엎친데 덮친 북의 안팎 사정은 말그대로 고양이라도 물 수밖에 없는 쥐의
형국이다.

웬만해선 원상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하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알면서 설마 하다가 물리지 않는 현명인데 이때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상대가 몽땅 사라져도 괜찮을 원수라면 이런 기회에 아주 제압하자는
일전론이 훨씬 더 선명할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피동적으로 합세한 죄없는 동포이기에 쌍방에 피해가
막대할 일전불사의 길을 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짓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 하나 가지곤 허전하다.

남은 며칠 동요하지 않고,양심을 가다듬어 민주-합리-공명 선거로 방향을
바꿀 수만 있다면 북한의 공갈협박은 전화위복의 은혜가 될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