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류/자연존중자세로 과학기술 발전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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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오 <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
지금부터 반세기 전만 해도 자동차 운전능력은 대단한 기술로 대우받고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0년대에는 손 한 뼘보다 짧은 계산측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기술자
의 긍지를 느끼곤 하던 때도 있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지금 자동차 운전기술은 지극히 보편화된 필수사항
으로 변했고 그 때의 그 계산측은 이후에 나온 계산기에 밀려 온데 간데
자취도 없어져 버렸다.
아무일이나 척척 해내는 개인용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이를 이제는 아무도
기술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같은 변화의 와중에 기술의 흐름도 무척 빨라졌다.
한 때는 기술이 발달해 가는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이
기술에 밀려나는 시대이다.
자고나면 새로운 기술이 저 만큼 앞서가는, 기술폭주시대로 바뀌었다.
기술의 구조도, 기술에 대한 요구조건과 충족조건도 바뀌고 있다.
대량생산에 힘입어 가격경쟁을 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어느덧 기술혁신을
통해 가격파괴를 해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제품생산에 고객을 깊이 포함시켜야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는
고객만족 지상주의시대가 됐다.
20세기의 문명은 과학기술문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기술의
존형 문명이다.
물론 과학기술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 부산물로 환경파괴라는 엄청난 역기능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환경 오염을 방지하며 나아가서 ISO 14001이란 국제환경규격을 제정하고
제품의 제조과정에서도 공해배출을 억제토록 하겠다고 한다.
그간 기술의 수준이 깊고 넓어진 반면 기술이 다루어야 할 과제는 더 빨리
늘어서 기술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환경보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우리가 잘 살려면 주변도
생각해야 한다는 진일보된 면모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들 인간이 중심이라는 발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기술을,자연이나 사회의 현상을 인간생활에 유익하도록 적용
하는 것 정도로 기술하고 있지 않나 싶다.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 필연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해 보자.
유한자원에 대한 유효활용방안을 수립함으로써 불필요한 생산을 억제하는
것, 자원 저소비, 무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그리고 콘크리트 석유화학
제품 등의 유해 고형물질을 재생-환원 사용할수 있는 무한순환기술,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연순환에너지의 실용화기술 등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풀고 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이런 과제들이 풀린다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무가의 보답을 지속적으로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자연을 자연의 입장에서 다룰 때가 되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각종 공해는 자연이 부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해현상은 자연의 자정 능력으로는 감당할수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 표현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은 공해로 앓아 병이 들었고, 그 결과 기상이변
이란 행동으로, 그리고 때로는 폭풍이나 지진과 같은 행동과 소리로 신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자연의 쇠퇴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며 함께 아파하고 노력
하는 지혜를 길러야 할 때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 자연과 함께 살자는 환경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 친하려면 자연을 더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과학을 인류의
생활에만 유익하게 적용하는 인간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학을 인류와
자연 환경에 유익하게 적용하도록 발상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싶다.
우리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야 할 처지라면 소극적인 방어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면서 나보다는 자연을 더 앞세우는 겸허한 자세로 자연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병은 우리가 잘 알고 그래서 치유방법도 잘 알고 있듯이, 자연의
병은 자연이 그 치유방법을 더 잘 알수도 있을 것이라고 유추할수 있다.
자연을 자연의 입장에서 연구를 해나가면 지금의 현상을 풀어나갈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에 기술을 붙여 키워 온 셈인데, 그 기술의 부산물이
지금 너무나 크게 나타나고 있다.
기술의 개념을 크게 바꾸고 기술에의 접근방법도 달리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기술이 재래기술의 탈을 훌훌 털어 내고, 인간과 자연의 지혜에 인문
사회과학등 모든 분야가 복합된 문화창조 기술로 다시 태어나야 삶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부리고 있는 기술은 자연의 파괴 내지는 소비를 전제로한
자원소모 기술이라고도 할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기술이 자연을 복원하고 자원을 창조하는 예술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
지금부터 반세기 전만 해도 자동차 운전능력은 대단한 기술로 대우받고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0년대에는 손 한 뼘보다 짧은 계산측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기술자
의 긍지를 느끼곤 하던 때도 있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지금 자동차 운전기술은 지극히 보편화된 필수사항
으로 변했고 그 때의 그 계산측은 이후에 나온 계산기에 밀려 온데 간데
자취도 없어져 버렸다.
아무일이나 척척 해내는 개인용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이를 이제는 아무도
기술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같은 변화의 와중에 기술의 흐름도 무척 빨라졌다.
한 때는 기술이 발달해 가는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이
기술에 밀려나는 시대이다.
자고나면 새로운 기술이 저 만큼 앞서가는, 기술폭주시대로 바뀌었다.
기술의 구조도, 기술에 대한 요구조건과 충족조건도 바뀌고 있다.
대량생산에 힘입어 가격경쟁을 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어느덧 기술혁신을
통해 가격파괴를 해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제품생산에 고객을 깊이 포함시켜야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는
고객만족 지상주의시대가 됐다.
20세기의 문명은 과학기술문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기술의
존형 문명이다.
물론 과학기술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 부산물로 환경파괴라는 엄청난 역기능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환경 오염을 방지하며 나아가서 ISO 14001이란 국제환경규격을 제정하고
제품의 제조과정에서도 공해배출을 억제토록 하겠다고 한다.
그간 기술의 수준이 깊고 넓어진 반면 기술이 다루어야 할 과제는 더 빨리
늘어서 기술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환경보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우리가 잘 살려면 주변도
생각해야 한다는 진일보된 면모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들 인간이 중심이라는 발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기술을,자연이나 사회의 현상을 인간생활에 유익하도록 적용
하는 것 정도로 기술하고 있지 않나 싶다.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 필연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해 보자.
유한자원에 대한 유효활용방안을 수립함으로써 불필요한 생산을 억제하는
것, 자원 저소비, 무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그리고 콘크리트 석유화학
제품 등의 유해 고형물질을 재생-환원 사용할수 있는 무한순환기술,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연순환에너지의 실용화기술 등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풀고 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이런 과제들이 풀린다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무가의 보답을 지속적으로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자연을 자연의 입장에서 다룰 때가 되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각종 공해는 자연이 부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해현상은 자연의 자정 능력으로는 감당할수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 표현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은 공해로 앓아 병이 들었고, 그 결과 기상이변
이란 행동으로, 그리고 때로는 폭풍이나 지진과 같은 행동과 소리로 신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자연의 쇠퇴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며 함께 아파하고 노력
하는 지혜를 길러야 할 때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 자연과 함께 살자는 환경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 친하려면 자연을 더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과학을 인류의
생활에만 유익하게 적용하는 인간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학을 인류와
자연 환경에 유익하게 적용하도록 발상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싶다.
우리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야 할 처지라면 소극적인 방어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면서 나보다는 자연을 더 앞세우는 겸허한 자세로 자연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병은 우리가 잘 알고 그래서 치유방법도 잘 알고 있듯이, 자연의
병은 자연이 그 치유방법을 더 잘 알수도 있을 것이라고 유추할수 있다.
자연을 자연의 입장에서 연구를 해나가면 지금의 현상을 풀어나갈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에 기술을 붙여 키워 온 셈인데, 그 기술의 부산물이
지금 너무나 크게 나타나고 있다.
기술의 개념을 크게 바꾸고 기술에의 접근방법도 달리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기술이 재래기술의 탈을 훌훌 털어 내고, 인간과 자연의 지혜에 인문
사회과학등 모든 분야가 복합된 문화창조 기술로 다시 태어나야 삶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부리고 있는 기술은 자연의 파괴 내지는 소비를 전제로한
자원소모 기술이라고도 할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기술이 자연을 복원하고 자원을 창조하는 예술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