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홍이 추아가 건네주는 손수건을 보니 초록 비단 손수건으로 자기가
잃어버린 손수건과 비슷하였으나 거기에 새겨진 무늬라든가 테두리를
홀쳐 박은 바느질 솜씨같은 것이 달랐다.

"추아 네가 주운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주워서 너에게 준거야?"

"소홍 언니도 잘 아시는 분이 소홍 언니에게 갖다주라고 하였어요"

소홍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가운 도련님은 원래 자기가 주운 손수건을 돌려주지 않고
다른 손수건을 추아에게 준 것일까.

소홍은 가운이 이렇게 하는데는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자신의 손수건인 것처럼 하여 받아두기로 하였다.

"고마워. 그동안 이 손수건을 얼마나 찾았는데"

소홍이 추아로부터 슬그머니 손수건을 받아 품안에 넣었다.

"아니 소홍 언니, 이야기가 틀리잖아요.

손수건을 찾아주면 사례를 해주겠다고 해놓고선"

추아의 입이 부루퉁해졌다.

"누가 사례를 하지 않는다고 했어? 추아 이야기를 들으니 사례를 받을
사람은 딴 사람인것 같은데"

"아이 언니도. 내가 그분한테서 이 손수건을 받아오느라고 얼마나
수고했는데요"

추아의 눈 앞에 젖가슴을 어루만지려고 하던 가운의 큼직한 손이
어른거렸다.

"알았어. 너한테도 사례할 테니까 염려 말어"

"뭘로요?"

"글쎄, 좀더 생각해보고"

이렇게 추아와 소홍이 적취정에서 손수건 문제로 재잘거리고 있을 무렵
보옥은 침대 위에 드러누워 팔베개를 한 채 졸리는 듯 눈을 감았다
떴다하고 있었다.

가운이 다녀간 뒤라 가운과 나눈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 되살아나 어떤
영상을 띄우기도 하였다.

가운은 시녀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특히 소홍이라는 견습시녀의
신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가운이 소홍에게 마음을 두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보옥 역시 소홍에게 호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가운의 마음이 그렇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흔쾌히 양보할 수도 있었다.

그런 문제들로 마음이 조금 어수선해지면 보옥은 대옥이 더욱 보고싶어
지곤 하였다.

대옥이 기거하고 있는 소상관으로 놀러나 갈까.

하지만 몸이 영 무거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습인이 들어오더니 침대에 걸터앉으며 보옥의 어깨를 집적거렸다.

낮잠이라도 자는 줄 알고 깨워 일으키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