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청지기의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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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잣집에 집안일과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다.
그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주인이 직접 재정
감사에 착수했다.
쫓겨날 것이 뻔한 것을 알아챈 청지기는 임기응변으로 주인에게
빚진자들을 일일이 불러들인 다음 증서를 위조해 채무금액을 절반으로
감해주는 선심을 쓴다.
청지기직에서 쫓겨나면 그들에게 기댈 속셈에서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 옳지 못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한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한 이 이야기는
언뜻 수긍할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톰슨성경의 주석에 따르면 신자가
아닌 일반사람들도 자신의 영리나 앞날을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것처럼 신자들도 천국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마땅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주인의 뜻을 거역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유일한 예이다.
서양에서처럼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청지기는 있었다.
대갓집 수청방에 있으면서 여러 잡일을 맡아보던 하인을 일컫는 말이
"청지기"인데 "청직" "수청" "장반"이라고도 불렀다.
대부분 양반이나 높은 벼슬아치 밑에서 분부대로 수종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지체는 낮아도 집안 하인들을 부리고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을 할 정도로 복종심 충성심이 강했다.
그러나 일정한 봉급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수십년간, 혹은 대를 이어
주인을 모시고 있었던 탓에 주인의 벼슬이 조금만 높아져도 아랫 사람들
에게 오히려 주인보다 더 기세가 등등했던 것이 청지기였다.
굶주린 범과 매가 짐승을 덮치는 것이 더욱 사납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개혁의 심장부"인 대통령관저 살림을 담당했던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부정축재 혐의로 나라안이 온통 떠들썩하다.
그가 근20여년 동안이나 김영삼대통령의 집안 대소사를 맡아 온 측근
이었다는 점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려 있는듯 싶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청지기"는 율에 따라
엄하게 처리되리라 믿지만 그가 주인에게 끼친 폐해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신의 조상을 지고 시내로 들어가던 나귀가 있었다.
행인들이 허리를 굽혀 조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자기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착각한 나귀는 으쓱해져 움직이지 않고 버티다가 혹독한 매질만
당한다.
이솝우화다.
옛날 표현대로 "이가 시리도록 웃을 일"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
그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주인이 직접 재정
감사에 착수했다.
쫓겨날 것이 뻔한 것을 알아챈 청지기는 임기응변으로 주인에게
빚진자들을 일일이 불러들인 다음 증서를 위조해 채무금액을 절반으로
감해주는 선심을 쓴다.
청지기직에서 쫓겨나면 그들에게 기댈 속셈에서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 옳지 못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한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한 이 이야기는
언뜻 수긍할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톰슨성경의 주석에 따르면 신자가
아닌 일반사람들도 자신의 영리나 앞날을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것처럼 신자들도 천국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마땅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주인의 뜻을 거역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유일한 예이다.
서양에서처럼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청지기는 있었다.
대갓집 수청방에 있으면서 여러 잡일을 맡아보던 하인을 일컫는 말이
"청지기"인데 "청직" "수청" "장반"이라고도 불렀다.
대부분 양반이나 높은 벼슬아치 밑에서 분부대로 수종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지체는 낮아도 집안 하인들을 부리고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을 할 정도로 복종심 충성심이 강했다.
그러나 일정한 봉급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수십년간, 혹은 대를 이어
주인을 모시고 있었던 탓에 주인의 벼슬이 조금만 높아져도 아랫 사람들
에게 오히려 주인보다 더 기세가 등등했던 것이 청지기였다.
굶주린 범과 매가 짐승을 덮치는 것이 더욱 사납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개혁의 심장부"인 대통령관저 살림을 담당했던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부정축재 혐의로 나라안이 온통 떠들썩하다.
그가 근20여년 동안이나 김영삼대통령의 집안 대소사를 맡아 온 측근
이었다는 점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려 있는듯 싶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청지기"는 율에 따라
엄하게 처리되리라 믿지만 그가 주인에게 끼친 폐해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신의 조상을 지고 시내로 들어가던 나귀가 있었다.
행인들이 허리를 굽혀 조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자기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착각한 나귀는 으쓱해져 움직이지 않고 버티다가 혹독한 매질만
당한다.
이솝우화다.
옛날 표현대로 "이가 시리도록 웃을 일"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