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밍햄 = 김희영 기자 ]

"우리는 모두 종업원이다.

유일한 구별은 일이다.

사무직과 생산직간에 남아있는 구분은 없어질 것이다"

지난 91년 로버사 노사가 체결한 신협약 부속문서 1조규정이다.

영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버밍햄시 근교의 a45번 도로를 따라
빅켄힐거리로 들어서면 로버사가 나타난다.

지난 68년에 설립된 이회사는 현재 독일의 BMW소유로 돼있다.

이회사는 과거에 다양한 차조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영국에 4개공장에서
승용차와 랜드로버 픽업승용차만 만들고 있다.

근로자수는 지난 70년만 해도 20만명에 달했으나 외국자동차의 시장잠식
등으로 현재 3만6천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내에는 운수및 일반근로자조합 등 모두 5개의 조합이 있으며 이들
조합이 연합해 사용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지난 70년대말까지 이회사의 노사관계는 힘의 논리가 앞서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조의 집단행동이 수시로 벌어졌다.

사용자도 완고했다.

노사 스스로 양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파업이 벌어졌지만 주요 쟁점은 직종에 따라 임금구분을
정해놓고 변경하지 않는 경직된 지급체계였다.

그사이 외국자동차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왔다.

로버사의 점유율과 생산성은 반대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근로자수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도 이때문이다.

지난 79년 데릭 로빈슨 노조위원장이 파업을 선동하는 문건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논란끝에 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회사 노사관계자들은 상호협력의 노사관계가 이때부터 점진적으로 정착
됐다고 입을 모은다.

사용자도 고식적인 경영형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80년에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결정토록해 근로자의 호응을
받았다.

노사간 대화통로가 넓어졌다.

제품의 품질과 재정상태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로버사의 노사는 6개월간의 협의끝에 91년 획기적인 신협약(NEW-DEAL)을
체결했다.

신협약은 근로자의 고용보장, 작업팀에의 권한부여, 조직 단순화,
변형근로 등 노사가 관련된 모든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무원칙한 노사관계에서 노사의 헌법을 마련한 셈이다.

신협약은 첫머리에서 "연이은 경쟁력강화 압박속에서 노사는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위해 대화를 하고 이같은 협약을 맺는다"고 언급돼 있다.

신협약의 결과 회사는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기로 규정했다.

생산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노사는 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또 다섯단계인 시간급근로자 계층과 6단계인 사무직구조를 3단계구분으로
통합했다.

3단계에는 단계별 봉급수준이 정해지고 기술습득을 통해 상위단계로의
진입을 보장했다.

질병으로 인한 장기결근자에게 6개월이상의 급여를 보장한 것을 비롯
정시출근점검제폐지 정기건강관리 작업복착용 회사실적에 따른 보너스제
도입 등도 결정했다.

신협약에 따라 노사간 연합협의회가 결성됐다.

사용자측과 근로자대표 33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임금지급방식과 고용조건등 중요한 사항을 공동결정키로 했다.

토니 하워드 노무국장은 "회사성장을 이뤄보자는 노사의 공감대가 10여년간
축적된 끝에 결실을 맺게 된것"이라고 평가한다.

신협약이 체결된 시점을 전후로 로버사의 노사관행은 크게 변했다.

92년을 벤치마킹의 해로 정하면서 회사내에 흡연과 마약.음주문화를
내몰았다.

인력배치의 잘못으로 생산성이 저해될 경우 근로자들이 재배치를 먼저
요구하고 있다.

직종간 벽도 허물어졌다.

예전엔 사무직 잉여인력을 작업현장에 배치하면 근로자들이 임금불평
등을 이유로 반발했으나 이제는 수용하고 있다.

노조와 근로자들도 경영자의 일방적인 작업지시를 받았으나 지금은
작업내용에 따라 스스로 작업팀을 구성하는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회사사정이 어려워져 소유마저 외국기업에 넘어간 로버사.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