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93년 발효된 UR협정에 따라 지적소유권협정이 7월부터 시행되는
까닭이다.
베른 협약에 따른 국제 저작권협약에 가입돼 있는 모든 나라의
저작물은 어떤 식으로든 저작권및 저작권보호권으로 보호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국제 저작권협정에 가입하지 않았던 탓에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계는 현재까지 저작권문제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은채
번역물을 공연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적인 구속력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남의 작품을 아무런
양해도 없이 마구잡이로 베껴 쓴다는 사실은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들이 지적소유권 문제를 바탕으로
농수산물을 비롯한 국제 통상-무역 문제에 얼마나 많은 압력을 가해
왔는가.
이들은 자국의 지적소유권 보호를 명목으로 우리가 마구잡이로
베껴먹은 저작권의 대가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압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이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우리 출판이나 연극등 문화계에는
별로 없는 것같다.
미국의 어떤 작가는 아무런 양해없이 남의 작품을 도둑질하는 것은
영혼을 훔쳐가는 것과 같다며 격분했다고 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선 우리도 이제 세계화추세에 발맞춰
당당하게 줄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계, 특히 연극계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연극으로 생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까닭이다.
첨단과학의 발달로 물질면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정신
세계는 공허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공연예술이 해야할 일은 바로 이 혼탁한 시대를 정화하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여인극장 창단30주년 기념작으로 애드워드 올비의
퓰리처상 수상작(94~95년)인 "키 큰 세여자"를 공연하기 위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키큰 세 여자"는 상업극과 뮤지컬이 판치는 미 브로드웨이에서
94~95년에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최고의 공연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공연 대리인이 없는 현실 때문에 필자가 직접 올비의 에이전트인
조지 레인이 소속돼 있는 뉴욕의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 개인 소개와
극단의 연혁 등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후 한달이상 답신이 없어 고민하던중 64년 김은국작 "순교자"의
영화판권을 얻은 일이 떠으르면서 미국에서는 작가나 예술가가 직접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할수 없이 뉴욕 공립도서관 극동과장으로 있는 김정수박사한테
대리인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서야 본격적인 교섭이 진행됐고 에이전트 레인은 첫 단계에서
번역자의 이력서와 어느 극장에서 언제 공연할 것인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
다음 문제는 작품의 로열티.협상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올비의
에이전트는 선금 5,000달러를 지정은행에 송금할 것을 요구해왔다.
선금이 너무 많다며 로열티를 깎아달라고 협의하고 있는데 다른
극단에서 이 공연을 준비중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결국 미국 측에서 선금 3,500달러를 송금한 뒤 정식으로 로열티를
논의하자고 나왔다.
그후 미국측에서는 변호사까지 동원해 50항목이 넘는 구체적인
계약조건이 담긴 서류를 제시했다.
우리측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국내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들의 경우 뉴욕주법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는 만큼 법률상 문제들이
발생하면 뉴욕주법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어쨌거나 협상이 잘 마무리돼 공연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 저작권문제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주미 한국 대사관의 문화담당관들이 우리 예술을 보다 잘 홍보하는데
힘써주기를 기대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