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취향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
주권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상품종류가 다양해지고 정보화사회가 진전되면서 소비자의 지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품질이나 취향에 관계없이 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사는데 만족해야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자신의 필요와 기호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도 시장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만 가도 품목마다 여러개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OB맥주를 골라야 했다.

유일한 대안이라고는 크라운맥주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93년 하이트맥주가 나온 이후 진로쿠어스의 카스맥주, OB맥주의
아이스 넥스 카프리 OB라거등이 잇따라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선택폭은
크게 넓어졌다.

최근에는 시장개방으로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밀러 코로나 레벤브로이
미켈롭 등 외국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맥주를 마실때 특정 브랜드 제품을 요구한다.

마시고 싶은 맥주가 아니면 사지 않는다.

제품 하나를 고를 때에도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밝히는게 요즘 추세다.

라면 과자 가전제품 자동차등 다른 상품에서도 이같은 경향은 마찬가지다.

"상품수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은 제품 하나하나를 고를 때마다 고심을
거듭한다"(신세계백화점 이동훈상무)는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중소음료업체인 비락이 내놓은 식혜를 히트상품으로 만든 것은
소비자들이다.

롯데칠성음료 해태음료 한국코카콜라등 기라성같은 음료업체들이
판매장에 냉장고를 깔아놓고 여러가지 제품을 진열했지만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비락식혜만을 찾았다.

제조업체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식 판매를 해온 영업행태는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다.

다양한 유통업태의 등장도 소비자들의 선택폭을 한결 넓혀놓고 있다.

올해초 유통시장 개방이후 할인점과 회원제창고형매장 카테고리킬러
(전문양판점)등이 국내에 진출하고 있다.

값싼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할인점이나 회원제창고형매장에 가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쇼핑하려면 백화점을 찾는다.

밖에 돌아다니기가 귀찮을 경우 전화나 컴퓨터통신을 이용해 주문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특정제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존재로 바뀌고있다.

인기가요그룹 룰라가 "천상유애" 표절시비로 활동중단선언까지 하게된
것은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한 소비자들 때문이다.

제품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기업활동등을 평가하고 이를 여러사람들에게
알리는게 요즘 소비자들이다.

소비자 주권은 획일적인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점차 향상되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시대로 바뀌고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같은 환경변화속에 제조업체들은 고객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가전 식품 생활용품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제품기획단계에서부터
소비자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주부들로 구성된 기획팀을 두고 있다.

또 젊은 사원들로 구성된 아이디어뱅크팀을 만들어 최대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고객 취향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소비자 주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조업체나 유통업체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태평양 전병인상무)가 온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