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 한솔종금 사장 >

정치의 계절이 다가와서 그런지 요즈음 택시를 타면 기사가 먼저 승객들의
불평을 대변하고 나선다.

YS개혁 바람에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을 한다.

좀 달리 아는체를 해보았댔자 "사람만 가두면 다냐"고 되레 핏대를 올린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모든 경제지표는 잘 나간다.

지난해만해도 수출 1,250억불 10대 무역국진입, 경제성장률 여전히 8%,
실업률 거의 제로, 대기업매출 크게 신장, 경상이익 수조원넘는 회사 속출,
만성적자기업 흑자번전, 그것도 보통 천억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시정의 얘기는 다수의 여론을 반영한다.

서민경제란 많은 사람들의 생업이며 그리하여 부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다.

왜 나빠지고 있으며 과연 개혁은 그 걸림돌인가.

냉정히 말해서 개혁은 어떤 것이든 민주화과정일 터인데 민주화를 환영한
사람들조차 웬 개혁탓이 그리 많은가.

우리는 이제나 그제나 줄기차게 민주화를 반대해 온 세력들을 알고 있다.

들어내 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우니까 걸핏하면 안보를 들먹이고 경제를
팔았다.

은밀하게 독재를 비호하며 간지로서 여론의 향방을 좌우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뇌리에는 설령 개혁이라 하더라도 다만 군인을 요직에서 내보내는
선에서 끝내야 하며 더 하라고 데모를 허가나 목자를 부라리는 사람들은
모조리 혼줄을 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러한 암흑을 뚫고 민주화가 개시된 것이다.

서민경제가 엉망으로 되는것은 과거 30년의 독재때문이다.

독재의 나팔수들이 억만금을 들여 많은 미맹과 <>맹을 만들어 놓았기에
그 유산이 얼마나 떫고 구린가를 가리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농업이 잘안되는 공산품을 수출하고 그 돈으로 농산물을 수입해다 먹는다면
이해가 쉽다.

중소기업이 안되는 나라는 중소제품을 수입해다 먹는다면 이해가 쉽다.

중소기업이 안되는 나라는 중소제품을 수입해다 그것을 가공해서 수출할수
밖에 없다.

지난해 수입된 1,350억불도 외국중소기업이 만들었거나 그것들을 조립한
기자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거의 산업정책이 이렇게 쉬운 길을 걸었으니 우리 중소기업이 끼어들
여지가 어찌 넓겠는가.

대기업이 권력의 도움을 얻어 어마어마한 가공시설을 들여다가 지역적 또는
시차적 독점체제를 구축해 놓고 여기에서 얻어낸 이익으로 그 자리를 더
확대 강화해 나간다면 이땅에 떨어지는 산업연관효과는 얼마나 되겠는가.

자체개발한 제품이 아니니 고부가 제품일리 없고 중소기업이 그 부품을
일부 생산한다해도 후한 마진을 쳐주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중소기업이 어떻게 크겠는가.

대기업이 기아마진을 줄 수밖에 없는 사정은 딱하지만 자가시장으로 끌어
들일수 있는 중소기업을 죄다 계열사로 거느리는 짓은 야속하다.

중소기업을궁지로 몰아 손아귀에 넣는 심보는 더 고약하다.

독재자가즐기는 약육강식의 반도덕적 반문화적 쾌감이 많은 분야에 중독
되고 있음을 들어내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중화학제품의 100% 경공업제품의 70%를 대기업과 그 계열기업이
생산하며 어느 교수의 지적대로 하단부없는 피라미드가 떠있는 듯한 산업
구조가 되고 말았으니 여기에서 고달프게 허우적거리다 중소기업이 부도를
맞는 것은 숫제 안태본을 탓해야 옳을 일이다.

물론 실명제가 긴급조치로 시행되므로서 자금(특히 비자금)흐름이 격랑을
일으키고 많은 기업이 난파위기에 몰린 사연, 독재가 무너지면서 이를 먹고
살던 일부 업종이 파리를 날리게 된 내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 동결로
건설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어중이 떠중이 많은 중소기업을 매달고 있는 건설업은 인프레 덕으로 소비
성향 높은 화폐소득을 살포하면서 그동안 서민경제를 이끌어온게 사실이다.

지난해 건설업 부도비중은 15% 미만이지만 건설불황으로 불꽃이 거진
중소기업은 엄청나다.

부도의 60%가 서비스산업이면 알조 아닌가.

특히 농민유입으로 농업의 두배만큼 커진 유통산업은 GNP의 15% 고용의
25%를 차지하지만 종업원 2일이하가 90%, 매장면적 10평이하가 80%나 되니
어떻게 작은 충격이라도 이겨 내겠는가.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 모든 책임을 김영삼정부가 질머져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비운이다.

독재의 유산은 곪아터질 지경에 이르러 문민정부에 넘어온 셈이다.

그런데 과거의 고도성장 수출드라이브도 이를 주도한 인사들의 탁월성을
예찬하면서 한편으로는 거기에 개입된 부정부패만을 금상첨화를 꺾은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문제삼는 것은 커다란 착란이다.

여기에서 오늘의 오해가 더 생겼다고 생각한다.

독재성장 부패가 뒤엉켜 있어 이것을 바로잡기는 힘들게 되어 있다.

개혁을 한다고 달려들다보면 자연 천방지축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안타깝다.

그러나 개혁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 또 그연출의 실세가
따로 있다는 소문등이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정책은 새로 짜야 한다.

그것은 흔히 얘기하듯이 금융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흡수해서 재미를 보는 것도 일시적인 현상이다.

다 흡수한다고 다 살수 있다면 사회주의는 왜 망했겠는가.

기업가 정신은 중소기업이라야 꽃핀다.

이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고 그 발전을 가로막는 지장물을 제거하는데
정책의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