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후한말엽, 유비는 관우 장비와 같이 도원결의로써 의형제를 맺고는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중국 하남성에 주둔하게 됐다.

이때 유비는 제갈공명을 부하로 맞아들였는데 27세의 나이 어린 그를
"공명선생"으로 호칭하며 존경을 표했다.

이에 대해 손위인 관우와 장비는 항상 언짢게 여겼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나머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유비는 "제갈공명은 나에게 있어서, 고기(어)에게 없어서는 안될 물
(수)과 같으니 그대들은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수어지교"의 어원이다.

한국의 기초 소재 산업이나 부품산업도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품산업의 주체인 중소기업과 세트메이커인 대기업의
관계는 수어지교의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대만이나 일본에 비해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이들 나라는 일찍부터 부품산업의 중요성을 인식, 기초소재 산업과 부품
산업 육성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결과 부품업체와 세트업체의 수직적
분업체제가 구축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70년대 경제성장 정책이 수출산업의 육성 위주였기 때문에
대기업을 위주로 하는 세트 산업, 즉 조립산업 위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노동임금 비교우위의 입장에서는 채산성을 확보할수
있었으나 임금 상승과 더불어 이제는 그 상황이 달라지게 됐다.

오히려 부품산업의 열세가 국내산업 경쟁력 상실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요즘 호황이라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를 보자.

반도체를 만드는 기초소재인 웨이퍼의 작년기준 국내시장 규모는 약
5천억원에 이르고 있으나, 국내 자급률은 국내시장 규모의 약 40%인
2천억원어치 정도이며 나머지 3천억원어치 정도는 미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 쓰는 실정이다.

올해는 국내 메모리 3사의 생산 수요가 확대돼 약 4천억원어치이상의
웨이퍼를 수입해야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물론 국내 생산능력과 기술력 미흡이 그 원인이다.

거기에다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장비의 국산화율은 10%에도 채 못미쳐
심각한 미.일 종속형 산업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한국 산업구조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초 소재산업과 부품
산업의 적극적 육성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을 허물고 기초가 튼튼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