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가 병원에 공급하는 의약품가격의 할인율을 놓고 대형병원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제약협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앞으로 의약품을 의료보험고시가의
25%이상으로 할인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동안 흐지부지 넘겨왔던 의약품 덤핑을 시정하고 의약품 구매에 있어
병원들이 누리고 있는 우월적 지위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약업계는 지난93년 이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당시 감사원이 의약품랜딩비리와 관련, 일부 제약사 및 병원 담당자들을
징계하면서 비롯됐다.

한국제약협회는 이에따라 94년 11월 제약회사가 의료보험약품 고시가의
25%이상 할인공급할 경우 해당제품의 의보고시가를 할인가격으로 내리도록
복지부에 건의키로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약품도매협회와 합의했다.

이들 협회는 또 계약가격외에 금품및 의약품을 추가로 제공하거나
이면계약을 한 것이 발견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키로 "공정거래
자율규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규약은 그동안 거의 지켜지지 않다가 이를 지키자는 제약업계의
여론이 지난해 11월부터 비등하면서 병원과의 마찰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삼성의료원 경희의료원 등을 비롯한 몇몇 대형병원들은 25%선 초과할인
억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 병원은 철저한 경쟁을 통해 최저가로 약을 구매하겠다며 올해
필요한 약품의 수급계약을미루고 있는 상태다.

한편 공정거래위도 25%선을 인정한바 없고 약값이 과대계상된 것은
사실이라며 경쟁이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제약업계가 "할인율 25%"라는 마지노선을 구축한 것은 경영난을
타개하고 신약개발 및 사업다각화를 위해서는 약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50대이하 중소제약업체들은 다품목 저가공세로 업계내 제살뜯어
먹기경쟁을 심화시켰고 지난 12년동안 약값은 평균 물가상승률에 한참
뒤떨어져 외형이 위축돼왔다고 강조한다.

제약업체들은 병원이 25%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94년 이전부터 복지부가
인정해온 제약업체.병원간 마진율 14.17%를 고수해 고시가대비
14.17%이하로는 약값을 내리지 않겠다는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반면 병원들도 이에 대해 사뭇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지난 연말 의료보험수가가 평균 11.82%인상됐으나 여전히 병원경영이
힘들다면서 수지보전의 여지가 큰 구매약값 인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대형병원의 연간 의약품 구입비는 3백~5백억원대에 이르러 약값을
10%할인할 경우 20~30억원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추산이다.

이들 병원은 공정거래위가 인정하지도 않은 공정거래자율규약을 내세워
시장경제원칙을 거스르는 제약업계의 담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원은 각각 의료복지향상과 물가안정및
공장도약가의 과대계상문제를 들어 약값을 현행 그대로 유지하거나 더
내려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동안 제약업계와 대형병원간에 약품구매를 놓고 벌어진 이면계약 등의
불미스런 비행이 어떻게 개선될지 미지수다.

15년이 넘는 이 케케묵은 논쟁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보건관계자들은 양업계가 국민의료향상의 본질을 도외시하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고지적한다.

원칙론만을 내세우고 있는 정부당국도 더이상 뒷짐만 쥐고 있을게 아니라
단호한 지침을 내려 교통정리에 나서야 할때인 것같다.

당국의 지침이확고하다면 그 질서속에서 당당히 영업및 구매행위를 할
수 있겠다는 것이 양업계의 입장이다.

<정종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