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등장으로 중간상인(소매업자)들이 경제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
것이란 얘기가 대두되고 있다.

인터넷옹호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은 갖가지 통신수단의 발달과 함께 출현한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결국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더 좋고 값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중 한사람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인 빌 게이츠다.

그는 최근 출간된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이라는 자신의 책을 통해 "중간
상인과 마찰이 없는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모뎀을 통해 소비자들이 중개인의 도움없이 원하는 상품을 찾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 그러한 예언도 그럴싸한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중간상인들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유통
시켜 소비자들이 수월케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윤을 챙겨 왔다.

이젠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돼 중간상인들에
게일종의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상품뿐만 아니라 법률서비스 의료서비스까지 인터넷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정보제공자라는 중간상인들의 고유기능이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심하게는 인터넷이 중간상인들의 두번째 고유한 역할인 유통기능까지도
뺏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바지에서 의약품까지 모든 상품이 인터넷상의 주문을 통해 중개상들의
중간유통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고 내다보고
있다.

신문과 비디오등 정보중개물의자리도 인터넷이 밀어낸는 것이다.

중간상인들이 완전히 설자릴 잃는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터넷옹호론자들은 두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한가지는 중간상인들간의 진입장벽의 붕괴.

사실상 인터넷을 이용, 누구라도 정보를 값싸게 수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보수집의 기회가 소비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잠재력을 지닌 미래의 중간업자들도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캘리포니아버클리대의 할 베리언경제학교수는 여행사를 예로 들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어디서 제일 싼 항공기티켓을 구입할지 알기
때문에 특수한 전자예약시스템서비스로 먹고사는 기존의 여행사들이 망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특수한 전자예약시스템에 투자할 필요없이 인터넷을 이용해
누구나 여행사를 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항공기티켓의 중개판매뿐만 아니라 항공과 호텔등을 연계시켜 새로운
신상품을 만들어낸다든지 여행지의 장단점을 고객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다시말해 여행사등 다른 중개업자들은 가치있는 정보를 인터넷을 거쳐 팔고
삼에 따라 "거간비"를 벌어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옹호론자들이 간과한 다른 한가지는 임금상승으로 인한 소득의 상승.

인터넷때문에 거래보다 편리해질수록 중간상인들도 다른 쪽에서 혜택을
받는다.

정보수집.제공비용이 낮아져 경제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지며 따라서 임금이
상승해 소비자들은 점점 자신들의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활이 풍요로워 질수록 새로운 부류의 중간상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우후죽순처럼 돋는다는 말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피자나 식료품을 배달해 주는 신부름센터업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며 좀더 전문화된 잡지와 신문이 등장, 독자들을 위해 정보를 제공
하게 됐다.

인터넷이 중개인들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란 주장이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중개활동과 중개인들이 속속 나타날 것이다.

기존의 중개인들만이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를 전문적으로 모니터해 뉴스와
정보를 수집하거나 그것을 다시 가공하는 업자들, 다름아닌 빌 게이츠가
바로 그런 중간상인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빌 게이츠와 그의 경쟁자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박수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리=김홍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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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s and Friction, Mar2, 96. (c) The Economist, London.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