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은 2년 이상을 끌어온 기본협력협정 체결협상을
매듭짓고 29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쌍방 대표간에
가서명했다.

이 협정은 앞으로 양측의 필요한 절차를 거쳐 정식 서명 발효된다.

이 협정은 통상관계 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기술규격표준, 과학기술협력,
문화교류, 제3국 공동진출문제 등 양자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망라한 포괄적인 협력협정이다.

또 공동 정치선언을 포함,협정 제1조에서 민주주의원칙 및 인권존중을
협력의 기초로 규정한 정치협정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같은 협정타결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한-EU 관계가 이제 한단계
격상된 수준, 한차원 높은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EU 관계는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해왔으나 썩 만족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지난 63년 외교관계가 수립됐고 71년부터 개도국에 베푸는 일반
특혜관세(GSP)혜택을 받아 수출이 차츰 불어났지만 그 규모는 대단치
않았으며 또 주로 우리쪽이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외길통행 관계였다.

변화의 가닥은 동구 공산정권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한 80년대 말부터 잡혔다.

당시의 EC는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새삼 주목을 받게 된
한국과의 관계강화 필요성에 눈떠 89년11월 비로소 서울에 대표부를
개설했으며 93년에는 이번에 타결을 본 기본협정체결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EU가 대한접근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배경에는 상품, 서비스, 투자
시장접근이라는 경제적 필요 외에 한국의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었다는
정치적 고려도 있었다.

한국을 경제와 정치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상호협력할 상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본협정은 일방통행 대신 양방통행,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고
이익을 나누는 동반자 관계로의 새출발을 의미한다.

한-EU는 이제 기본협정의 취지와 내용을 살려 통상 자본및 기술협력을
질과 규모에서 획기적으로 확대함은 물론 이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조기에 원만하게 해결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쌍방은 매년 한 차례씩 각료급 고위회담을 해온데 이어 이번에 다시
차관급 공동위를 구성키로 했고, 주요 통상마찰 요인인 덤핑문제와
관련해서는 조기경보제를 도입키로 하는 등 협력의 기초는 일단 갖췄다.

남은 일은 행동과 실천이다.

한-EU간 교역량은 연간 300억달러 수준으로 전체의 13% 정도이며
우리쪽이 20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보고 있다.

또 투자는 누계액이 9억4,000만달러대 28억7,000만달러로 EU쪽의
대한 투자액이 더 많다.

EU의 경제규모에 비춰 상대적으로 적은 현실은 곧 장래의 잠재력을
말해준다.

특히 EU 회원국은 장차 계속 확대되고 결속이 강화될 예정이다.

때마침 25개국 아시아-EU 정상회의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중에
전해진 기본협정 타결소식이어서 더욱 뜻깊다.

한-EU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