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전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 공판이 열린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예정시간인 오전 10시에 정확히 맞춰 김영일 형사합의30부장을 필두로
재판부가 입정하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96고합 12호,병합 96,고합 95호 피고인 전 두 환" 재판장의 낭랑한
호명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피고인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그가 입은 하늘색 수의에는 "3124"라는 칭호번호(수감자 번호)가
선명히 새겨 있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비교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이어 전씨와 함께 구속된 안현태 전경호실장, 성용욱 전국세청장과
불구속 기소된 안무혁 전안기부장, 사공일 전재무부장관, 그리고 5.18사건
관련 혐의로 구속된 뒤 비자금 조성 개입 혐의가 추가된 정호용의원 등
5명의 피고인이 차례로 입정했다.

이 과정에서 생전 처음으로 법정에 선 전씨는 노태우전대통령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인정신문후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착석해야 하는 법정내 규칙을 모른 채
입정하자 마자 자리에 앉았다가 재판장의 주의를 받고서야 기립한 것이다.

피고인들의 입정이 끝나자 재판장은 노씨 비자금 사건 첫 공판때와
마찬가지로 피고인들의 뒷모습에 대한 사진촬영을 허용했다.

방송용 ENG카메라 1대와 신문 카메라 1대가 40초간에 걸쳐 부지런히
피고인들의 뒷모습을 담아냈다.

10시5분 재판장의 인정신문이 시작됐다.

전씨의 본적을 확인한 뒤 재판장은 주소를 물었다.

"주거지는요"

"지금은 "안양교도소"이고요,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95의4입니다"

"현재 직업은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전씨는 오랜 단식탓인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해 나갔지만 그 어투만은
또박또박했다.

전씨외에 나머지 5명에 대한 인정신문까지 마친 10시8분.

재판장이 재판절차에 관한 몇가지 주의를 준 뒤 곧바로 전씨의 변호사인
전상석 변호사가 재판진행에 끼여 들었다.

"전두환 피고인이 조금 피곤해 보입니다"

재판장은 이에 "전두환 피고인, 재판 진행중 본인이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면 곧바로 재판장에게 의사표시를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전피고인은 "예, 재판도 연기해 주시고 여러가지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며 고마워했다.

10시9분.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검찰의 모두진술(공소장 요지에 대한
진술)이 시작됐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성호 서울지검특수3부장은 "전두환 피고인은 80년
8월27일부터 88년 2월24일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며
8분간에 걸쳐 6명의 피고인에 대한 기소요지를 진술했다.

전씨는 만감이 교차하는듯 눈을 지그시 감은채 경청했다.

그리고 검찰의 공소요지가 낭독되는 동안 가끔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다리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심정이 됐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결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당당함도 잃지않으려 했다.

검찰의 모두 진술이 끝난 10시17분.

재판장은 검찰의 직접 신문에 들어가기 앞서 "피고인은 검찰의 직접
신문중 자신에게 불리한 신문내용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자신에게 이익되는 부분만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며 피고인의 권리를
확인해 주었다.

이어 재판장은 검찰의 직접 신문을 지시하려 하자 전씨측의 전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례적으로 "변호인측 의견 진술을 하고 싶습니다"며
발언기회를 요청했다.

재판부의 수락에 따라 전변호사는 미리 준비한 A4용지 8장분량의
의견서를 13분에 걸쳐 낭독했다.

그 요지는 검찰의 공소장사실이 극히 추상적이고 편파적이라는 것이었다.

재판장도 전씨측 변호인단의 주장에 일부 수긍이 간듯 검찰의 공소장중
"그동안 <><>그룹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데 대한 사례 및
앞으로도 기업경영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계속 선처해 달라는
명목으로......에서 "배려"와 "선처"가 뜻하는 바가 상당히 모호하다"며
공소장이 일부 미비하게 작성됐음을 간접 시인했다.

전씨는 10시30분부터 시작된 검찰의 직접신문을 받던중 35번째 항목에
대한 신문이 끝난 11시35분께 잠시 휴식을 요청해 법정 대기실에서
15분간 휴식을 취한 뒤 11시50분께 재입정, 신문에 임해 나갔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