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체들에게 있어서 올해는 90년대 들어 가장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듣기에도 생소한 각종 첨단 제품들이 잇따라 선보이기로 예정돼있어 아차
하는 순간에 선두대열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비디오디스크(DVD) 개인용 휴대단말기(PDA)등 "디지털"과 "멀티"를
키워드로 한 최신형 전자제품들이 줄줄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말 그대로 가전의 "신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가전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제품은 단연 DVD.

컴팩트디스크(CD)와 같은 지름 12cm의 원반에 고선명(HD)TV급 영상을
2시간이상 담을수 있는 제품이다.

물론 이 제품은 아직은 재생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와이드TV등 영상부문이나 컴퓨터등 통신부문과 연계되면 수요는
무궁무진하다"(삼성전자 허기열 상품기획팀장)는게 업계의 판단이다.

국내에선 삼성과 LG전자가 일본업체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9월께 첫
상용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값은 LG가 50만원대, 삼성이 70만원대정도.

기존 가전의 대표격인 TV는 올해 기능과 용도면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맞는다.

그 출발점은 오는 7월로 예정된 디지털위성방송 서비스.

위성방송은 화면비가 가로 세로 16대 9인 와이드방송인데다 디지털신호로
영상을 압축.전송하기 때문에 기존 TV로는 시청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위성방송은 대체수요에 의존하고있는 국내 TV시장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전자는 이를 겨냥해 이미 와이드TV의 풀라인업 체제를 갖췄다.

삼성전자는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와 내장형 와이드TV를 개발완료하고
4월중 시장에 내놓을 방침이다.

대우전자도 올해중 와이드TV의 전모델을 구비키로 했다.

벽걸이형 TV 역시 올해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 선보인다.

삼성전자에서 6월께 출시할 예정인 14인치급 박막액정TV가 선두주자다.

가격은 4백만원대로 비싼 감이 있지만 기존 TV와는 개념이 다르다.

제품 두께는 불과 3.5cm.

그러나 화질은 고선명TV만큼 뛰어나다.

또 컴퓨터 모니터를 겸할 수 있어 모니터 대체효과도 있다.

삼성은 연말께 22인치급도 내놓는다.

특수안경 없이도 입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입체TV" 역시 주목받는 제품
이다.

지난해말 삼성전자가 국내 처음으로 상업화했다.

늦어도 올해중 일반가정용으로 입체TV를 판매한다는게 삼성측 계획이다.

대우전자도 위성방송에 맞춰 올해중 디지털 VTR를 내놓는다.

디지털 신호를 전송받을 수 있고 해상도가 일반 비디오테이프보다 2배
이상 선명한 제품이다.

미국 오라사와 기술제휴해 개발한 거울반사식 브라운관(AMA)방식 TV도
올해중 상용화한다.

40인치급 이상 대형화면을 굴곡없이 볼 수 있다.

LG전자는 6월께 야심작을 내놓을 예정.

차세대 "통신기기의 꽃"이라는 개인용정보통신단말기(PDA)가 50만원대와
60만원대 두개 모델로 선을 보인다.

PDA는 휴대폰과 무선호출기 무선팩시밀리등의 통신기능과 함께 전자수첩
전자사전등의 기능도 같이 갖춘 제품이다.

디지털기술을 응용한 다기능 복합화제품 개발도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비디오카메라에 VTR와 TV기능을 첨가한 마이캠비전(삼성전자)이나 디지털
기술을 채용해 화질을 높인 디지털캠코더(LG전자)는 물론 VTR과 CD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멀티비디오시스템(대우전자), VTR 비디오CD 음악CD등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멀티비디오(아남전자)도 이미 시판중이거나 곧
선보일 제품들.

아예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카메라(현대전자)도 이미 시중에 시판되고
있다.

이 제품은 영상을 찍은 후 컴퓨터와 연결하면 자유자재로 영상을 편집할
수도 있다.

70.80년대 국내 경제를 주도했던 가전업계는 90년대 들어 디지털기술이
채용되면서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세탁기 냉장고 컬러TV 등 전통 가전의 보급률 포화상태는 가전업계
를 더욱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신제품으로 나올 첨단 제품에 가전사들이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상대적 쇠퇴를 가져온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재도약을 꿈꾸는 가전업계.

"디지털 가전"과 "멀티 가전"은 재도약을 향한 힘찬 날개짓을 시작했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