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제조업의 성패는 원료의 원활한 공급에 달려있다.
처녀강과 고철이 주 원료인데 처녀강은 광산에서 채취한뒤 여러차례의
기계적 분리 절차를 거쳐야 비교적 순수한 화학성분을 갖게 되므로 시설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고철에 비하여 순도가 월등히 높다.
처녀강을 쓰는 제철공장을 종합공장이라 부르고 고철을 전기로에 녹여서
사용하는 공장을 간이공장이라고 한다.
고철과 간이공장을 활용해 다 기울어져가는 미국 철강업을 회생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다.
뉴코어사의 켄 아이버슨 회장이다.
지금은 미국 굴지의 철강생산업체이나 원래는 철강업계와는 관계없는
원자력분야 사업을 했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자 조그만 조이스트 제작공장을 무상으로 인수받아
철강업에 종사하게 된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시설, 독특한 경영방식,
저렴한 가격으로 전 미국시장을 휩쓸 정도로 커나갔고 지금은 미국 3대
철강회사의 하나로 성장했다.
켄 아이버슨의 성공은 위의 세가지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그의 모든 공장은 전부 고철을 사용하는데 있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전 미국에 깔려 있는 고철을 처리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는 고철을 충분히 활용할 최신 생산설비를 인디애나의 옥수수밭 가운데
건설해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
켄 아이버슨의 경영방식 또한 특이하다.
포천 500대 기업의 본사라고 하지만 한적한 미국동남부 샬롯데시의 조그만
5층 건물에 방 몇개를 세내 들어 있고 직원도 전부 합쳐 23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철강회사라면 다 갖추고 있는 전용 제트기, 고층건물, 호화
골프장등 어느하나 갖춘 것이 없다.
그럼에도 세계 어느 철강회사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장담하고 총 생산량의
10분의1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기존의 대기업 U S 스틸과 베들레헴이 경제성이 없다고 버리는 품목들을
하나씩 개발해 성공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볼트와 너트, 베어링, 와이어, 그라인딩볼 등은 미국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뉴코어사의 생산원 전원이 비노조원이며 이들의 급료는 생산실적에 따라
매월 달라진다.
빛나는 눈동자의 켄 아이버슨은 앤드루 카네기 이후 미국이 낳은 가장
훌륭한 철강 기업인이고 강철왕 2세라고 불려질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한 그에게도 넘지 못할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고철에만 의존하던 미니밀로 성공했으나 고철의 가격폭등 품질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한국의 철강업이 당면한 문제와 동일하다.
까다로워져만 가고 있는 고객의 시방서를 3회이상 재활용된 고철로서는
맞추어 낼 방법이 없고 점차 부가가치가 낮은 저질품만 생산하게 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그 돌파구로 아이버슨은 남미 트리니다드 섬에 철강 원료생산 시설을
설계중이며 한국업체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도 빨리 남북이 통일돼 북한의 훌륭한 철광석을 활용할 날이 있기
바란다.
또 포항제철이 브라질에 건설중인 필레트 공장은 참으로 현명한 결단이라고
본다.
더불어 고철에만 의존하는 우리 철강업체들에 경각심을 일으켜주고 싶다.
둘째 기존업체와 노조의 반발이다.
처음 기존 대형 철강회사들은 아이버슨을 아마추어 업자로 보고 오래갈것
같지 않다고 보았으나 점점 커가고 이제는 미국 3대 철강회사의 하나로
바짝 뒤를 쫓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수 없다.
기존 대형업체들은 철강노조와 연합, 뉴코어사가 값싼 고철을 원료로 싼
임금을 주고 싸구려 품질만 생산하는 저질업체란 낙인을 찍으려고 벼르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계에서는 뉴코어 주식을 미국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대형업체들의 예견이 맞아 들고 있다.
지금 전세계의 철강업자들은 대체원료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고철의 주요 공급원이 미국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자체의 공급에도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대부분 철강에 의존하고 있다면 철강 원료의
확보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