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는 은행들이 주식투자를 해서 상당히 재미를 보았다.

주식투자를 많이 한 은행일수록 주가상승에 힘입어 이익도 많이 냈다.

일부 시중은행은 과감한 주식투자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면서 이들의 공격적
경영이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이 본연의 업무인 대출은 소홀히 하고 주식투자를 능사로
여기는 데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오늘날 금융의 증권화는 세계적 추세이며 은행의 업무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은행의 증권업무도 허용될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은행법에도 자기자본의 100%까지 유가증권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대기업들이 증권시장을 통해 주식 회사채 등의 발행을
늘리기 때문에 은행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대출이 상대적으로 위축된만큼 주식 회사채 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근래에 금융자율화 추진으로 금융기관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의
수익률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때 은행의 업무영역을 넓히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고수익의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또한 낙후되고 경쟁력이 낮은 우리 은행들이 모처럼 수익성 위주로 자금을
운용하겠다는데 무작정 반대만 할수도 없다.

어쨌든 증권시장이 호황일 때에는 은행의 주식투자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주식투자는 기본적으로 투기성을 배제할수 없으며 높은 위험이
따른다.

예금자가 은행에 자금을 맡길 때는 대체로 안전하고 확실한 원리금이
보장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고 예금자가 높은 수익, 높은 위험도 불사한다면 은행보다 증권
회사나 투자기관에 자금을 맡길 것이다.

이와같은 예금으로 맡은 자금을 은행이 고수익-고위험의 증권투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89년 12.12사태와 같은 증시파동이 발생하면 대규모 주식투자를 한
은행은 도산할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 정부는 도산하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또 다시 대규모의
한은특융을 지원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될뿐 아니라 경제의 안정기조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부실한 은행을 정부가 반드시 구제해야 하느냐는 도덕적
위험(moral hazard)도 문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은행들이 증권투기로 부실화되었을때
정부가 설령 이들을 구제하려는 의지가 있더라도 과연 능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규모 금융공황이 일어나서 경제가 파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멕시코 일본 등에서도 환투기및 부동산투기로 인한 은행들의 대규모
부실화로 경제가 중병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증시가 침체되었다.

높은 경제성장, 안정적인 물가수준, 해외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등
증시주변의 기초 경제여건은 비교적 좋았는 데에도 주가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권의 비자금파문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주가변동은 불규칙
하고 불확실한 것이 속성이다.

그 결과 대규모 증권투자를 해서 한동안 상당한 이익을 보았던 은행들이
이번에는 엄청난 주식평가손을 보게 되었다.

은행의 유가증권 평가손을 줄이기 위해 정책당국도 평가충당금의 적립기준
을 종래의 3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도 일반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전년대비 23%나 감소
했다.

여기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은행들이 그동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외면하고 주식투자에 열을
올렸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한국은행의 재할인등 정책자금에만 의존하고 은행 자금
으로는 증권투기를 해온 셈이다.

물론 금융자율화를 한다는 마당에 여신운용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은행으로서 여신제한 부문도 있을 법하다.

기업의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는 대출을 금지하면서 은행 스스로는 증권투기
를 해도 괜찮은가.

그렇다면 앞으로 은행이 주식투자할 경우 그만큼 한은의 총액한도 대출을
상계하는 방안도 검토해봄직하다.

한편 금유자유화에 따라 경쟁이 심화될수록 금융기관들은 증권투자등
고수익-고위험 투자를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

투자수익이 생기면 은행이 챙기고 잘못되어 손실이 나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작년에 정책당국이 유가증권 평가충당금 적립기준을 대폭
낮추어준 것은 은행의 건전경영 및 책임경영을 촉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였다고 본다.

은행의 회계기준이 형편에 따라 고무줄처럼 신축성이 있다면 은행의
공신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즉 은행의 무분별한 주식투자를 경계해야 하며 건전경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위험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규모 은행 부실화로 금융공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