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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2일자) 영광원전, 대화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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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영광군의 원전건설허가 취소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최근 각종 혐오시설의 위치선정을 둘러싸고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데도 중앙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간의 의견조정및 업무협조가 잘 되지 않아
    언제 어디서 심각한 마찰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걱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로 파장을 미칠 전망이며 이를 계기로 철저한 반성과
    예방책이 요구된다고 본다.

    우선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쓰레기소각장과 같은 지역사업 뿐만아니라
    원전건설이라는 국책사업에 까지 예외없이 중요한 변수로 대두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국가이익 못지 않게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가 모든 정책추진에 충분히 고려되고 있으며 마찰이 생겼을
    때에도 이해조정을 위한 제도및 경험이 잘 갖춰져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중앙정부건 지방자치단체건 이런 종류의 문제대응에
    미숙하며 국익우선이라는 관행에 젖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다 사태를
    악화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세계화가 진전되고 지역 사회-경제가 국경을 넘어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부터라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효율적인
    업무협조체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땅에는 안된다는 님비(Nimby)현상의 예방및
    대응방안이다.

    먼저 지나친 지역이기주의는 국민경제는 물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행법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지역주민과 관련단체의
    반발을 무시하고 사업추진을 강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발을 예방하기 위해서 환경영향평가나 사전 입지조사를 철저히 하고
    충분한 피해보상을 해주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특히 방사능 누출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원전건설이 집중된 지역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세우는등 보다 확실한 대응노력이 요망된다.

    끝으로 국내 전력수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에 이미 26.8%에
    달했으며 오는 2010년에는 33%에 이를 전망이므로 앞으로 이같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도 원전 화전 수력등 발전원별 개발
    가능성과 안전성 경제성 등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1차에너지 공급을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에서 효율이용
    이나 소비절약은 소홀히 한채 원전건설을 통한 공급확대에 급급한 점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가랑잎 하나에도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말대로 이번 사건은 세계화-
    지방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의 정책수행과 행정처리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영광군의 행정처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정소송이나
    내무부 개입같은 기계적인 대응보다 지역주민과의 대화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을 꾀해야 하겠다.

    그리고 빨리 풀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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