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한결같이 얼룩무늬 두건을 벗지 않은 아라파트의 여러 이미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면 역시 불굴의 집념일 것이다.

바로 그 집념이 그의 민족에게 반독립이나마 자치 정부를 안겨주었고,
나아가 오래동안 풍기던 화약냄새를 지구촌 또 한군데서 씻어내는데
기여했다.

물론 이것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의 고난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안팎의 겹친 시련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양 당사자의 근본입장이 현격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치정부 수립을 독립국 건설의 제 1단계로 보는 반면
칼자루를 쥔 이스라엘은 양 민족 평화공존을 위한 제한적 자치허용 이상은
양보할수 없다는 평행선을 계속 그리고 있다.

근본 입장차이 못지 않게 양 국내엔 모두 극렬 반대파가 언제 판을 깰지
모를 기세로 교란을 멈추지 않는다.

하마스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주전파들은 대이스라엘 평화협상 자체를
반대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에선 평화의 기수 라빈을 암살시킨 반발이 세를
꺾지 않은채로 있다.

지난 21일 선거 전후에도 역내에선 총격을 포함한 반대 시위가 감행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속 아라파트의 높은 지지 획득이다.

총 유효투표의 88.1%로 자치정부 대표(대내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서
9.03%득표의 경쟁자 칼릴을 예상 이상 큰폭으로 압도한 것이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독립노선 갈등에서 극한투쟁 아닌 아라파트의 기존
입장이 선거를 통한 공식합의로 도출되었다.

이는 팔-이 양국내 극단 반발을 견제하고 특히 시리아의 이스라엘 인정을
유도함으로써 중동평화 최대 결림돌을 제거하는 한 디딤돌의 마련이라 볼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현안들을 교섭 해결
하며 독립의 성취를 향해 다시 한발을 내딛는 데는 많은 장애가 놓여 있다.

또 더러는 폭발성 난제들도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부닥칠 일 가운데 외교-국방의 독립적 기능이 없는 팔 정부가
제3국과의 접촉 내지 관계설정에서 독자성을 띨 경우 이스라엘과 마찰필지의
과민사항이다.

물론 보다 민감한 난제는 내부에 더 많이 쌓여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오는 5월 협상을 시작, 99년에 종결키로 합의된
동예루살렘의 지위문제다.

1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한 양 민족 공동의 성지로서 팔레스타인은
이곳을 이미 수도로 정하고 반환을 요구해 오고 있다.

잡다한 대립점들은 그 밖에도 많다.

그러나 근거리 거주 양국인간의 하찮은 마찰이라도 바람 불기에 따라선
큰 불로 인화, 대세를 순식간에 역전시킬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하나도 하찮다 깔볼 것이 없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중요한 성패요소는 경제재건 국민생활 향상이다.

30년간 쑥밭이 된 옛 베이루트의 번영 경제를 얼만큼 효과적으로 회복
하느냐가 다른 모든 조건을 지배할 것이다.

유-무상 1,500만달러 원조로 선진권과 나란히 복구참여를 개시한 한국,
특히 역전의 경험을 축적한 한국기업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촉망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