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화를 내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 거예요? 나를 어릿광대에
비겨 놀렸잖아요"

대옥이 눈물이 조금 비친 눈으로 보옥을 흘겨 보며 말했다.

"난 대옥 누이를 어릿광대에 비긴 적도 없고 놀린 적도 없는데.

오히려 상운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을 뿐이야"

"막으려고 했다구요? 보옥 오빠도 상운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 아니에요?

난 말이죠, 차라리 보옥 오빠가 내가 어릿광대랑 닮았느니 하며 농담을
했다면 그런대로 참았을 거예요.

그런데 상운이 그게 그러니 상운이도 미워지고 보옥 오빠도 미워지고
모두 다 미워졌어요"

사실 보옥도 대옥이 어릿광대 배우 아이랑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얼른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여자들은 남자의 속마음을 알아맞히는 데 귀신 같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대옥이 다시 말을 뱉었다.

"더 화가 난 것은 말이죠,보옥 오빠가 상운이에게 눈짓을 했기 때문
이에요"

"아, 그건 말이야, 방금 말했듯이 상운이가 대옥 누이를 놀리는 걸
막으려고 그랬다니까"

보옥이 황급히 고개를 들고 변명하였다.

"상운이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보옥은 대옥이 무슨 뜻으로 이런 질문을 하나 하고 대옥의 얼굴을
멀거니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왜 대답을 못해요?"

"내가 상운을 위해서 눈짓을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군.

난 말이야, 대옥 누이가 놀림감이 되지 않도록."

"그게 아니라, 상운이가 나를 놀리는 것은 상운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니까 아예 나 같은 것은 상대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눈짓을 한 거
아니예요?"

야, 어떻게 여자의 머리는 이렇게까지 멀리 돌아갈 수 있는가.

보옥은 기가 차서 감탄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상운이가 나를 놀리면 내가 못된 성질이라 상운에게 반드시
보복을 해서 낭패를 당하게 할 텐데 상운이가 그렇게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눈짓을 한 거죠, 맞죠?"

보옥은 또 한 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대옥을 아끼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오해를 받다니 보옥은
그 순간만큼은 살맛이 뚝 떨어지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래 맞다. 너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고 상운을 위해서 그랬다"
하고 고함을 지르고만 싶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