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체와 통신업체의 "결혼".

전혀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결합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통신업체의 제휴가 속출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통신업체가 금융시장에, 금융업체가 통신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멕시코 전화시장을 독점해온 이 나라 최대의 통신회사 텔멕스.

서비스가 형편없기로 악명 높은 업체이다.

이 회사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

대고객중의 하나인 금융업체 바나멕스가 고객대열에서 이탈하겠다고 선언
했기 때문이다.

바나멕스는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해 자체 통신망을 구축하는 한편 미국
통신업체 MCI와 손잡고 합작회사 아반텔을 세웠다.

양사는 아반텔을 통해 내년 1월부터 장거리전화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6억달러를 들여 멕시코 35개 도시를 잇는 광케이블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텔멕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 전화회사는 2년전 정부의 승인을 받고 인버사라는 새 은행 설립에 착수
했다.

전문가들은 텔멕스의 막강한 자금력에 힘입어 인버사가 수년내에 손꼽히는
은행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자금융시대를 맞아 금융.통신업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통신업체들은 케이블TV업체나 PC통신업체들의 시장잠식에 맞서 기존
통신망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서비스업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업체들은 전자거래체제를 구축,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속셈으로 통신
업체의 손을 주저없이 잡고 있다.

스페인의 금융업체 방꼬산탄데르는 지난해 영국 최대의 통신업체인
브리티시텔레콤과 제휴했다.

미국 지역전화회사 나이넥스는 작년 하반기중 상업은행 체이스맨해튼과
손잡았으며 이 무렵 스페인에서는 금융업체 아르헨따리아가 전화회사
뗄레포니까 데 에스빠냐의 지분 2.5%를 3억달러에 사들였다.

아르헨따리아의 최고경영자 미구엘 조리타는 "이들(전화회사)과 손잡는
것은 혈관에 아드레날린(부신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화회사와 손잡은 것을 계기로 우선 스페인 해변을 찾는 관광객들
에게 전화나 컴퓨터통신망을 금융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속셈을 갖고
있다.

영국에서는 금융업체 바클레이스가 케이블&와이어리스(C&W)의 자회사
머큐리와 제휴, 바클레이스의 크레디트카드를 소지한 고객이 머큐리의
전화망을 이용해 각종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험을 벌이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또 브리티시텔레콤 및 미국의 IBM,AT&T와 공동으로 인터넷을
통해 대금을 결제토록 하는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있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방카 나지오날레 데 라보로와 스페인의 방꼬산탄데르는
영국 브리티시텔레콤과 손잡고 국내에서 전화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금융.통신의 제휴는 국가에 따라 다소 사정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비교적 활발하지 않다.

특히 상대기업에 자본참여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산업자금의 금융 지배를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통신망과 금융서비스의 결합을 함께 시험하는 형태의 제휴가
일반적이다.

나이넥스와 체이스맨해튼은 작년 9월 양방향 케이블TV를 이용해 대금을
결제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미국 최대의 상업은행 시티코프는 나이넥스, 벨애틀랜틱과 함께 전화를
이용한 홈뱅킹 서비스를 시험하고 있다.

금융업체에게 손을 내미는 통신업체의 속셈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금융업체의 도움을 받아 금융서비스를 시작한뒤 라이벌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 앤더슨컨설팅의 컨설턴트 로버트 밸덕은 "통신회사가 은행을 매입할
수도 있고 은행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전화업체들만이 금융시장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컴퓨터업체들도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튜이트는 각기 금융소프트웨어 "퀵큰"과 "머니"를
무기로 금융서비스에 한다리를 걸쳐놓고 있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한뒤 국제통상협상에서는 금융서비스.통신
시장 개방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시점에 금융.통신업체들이 국가를 초월해 손잡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금융업체와 통신업체가 손잡고 해외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설 날도
멀지 않았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