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은행 창구, 만원 주차장, 바쁜 현대인에겐 즐겁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홈뱅킹.펌뱅킹이 보편화되면 은행 지점은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가정과 사무실이 지점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권총을 빼들고 은행금고를 터는 일도 우스운 옛얘기로 변한다.

미래의 강도는 컴퓨터 앞에 앉아 돈을 훔친다.

선진국 은행들은 인터넷을 통한 금융거래도 시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자와 금융의 결합으로 전자금융시대가 열리고 있다.

선진국들의 변화양상을 시리즈로 엮는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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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전 아더 클라크와 아이삭 아시모프가 공상과학소설에서 "현금없는
사회"를 얘기했을 때 독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현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넘겨줄 바보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예언"은 적중했다.

90년대 들어 보편화된 ATM(현금자동인출기) 크레디트카드 POS(판매시점
관리) 등은 "현금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이 세가지의 기능을 합친 "스마트카드"라는 전자화폐가 급부상
하고 있다.

스마트카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장하고 있어 다른 기계와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현금대체카드.

주로 버스.기차를 이용하거나 일상용품을 구매한뒤 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발히 실험되고 있다.

오는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는 스마트카드가 대대적인
현장테스트를 받는다.

미국의 비자인터내셔널과 지방은행들은 올림픽기간중 1백만장의 스마트
카드를 판매할 예정이다.

애틀랜타를 찾아온 이들이 돈계산 때문에 애먹지 않도록 함으로써 스마트
카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이다.

전자화폐 실험은 지난해부터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은행과 미들랜드은행이 작년 7월부터 인구 17만명의
소도시 스윈든에서 실시하고 있는 "몬덱스" 실험이 대표적이다.

"몬덱스"는 IC(집적회로)를 내장한 카드에 화폐가치를 입력해 전화카드처럼
사용하는 일종의 스마트카드.

스윈든 시민 9천명은 시내의 7백50개 상점에서 이 카드로 대금을 지불하고
공중전화카드로도 사용한다.

반년간의 실험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월평균거래액은 7만파운드(8천5백만원)에 그쳤다.

분실 우려를 감안해 내재금액을 5백파운드(61만원)로 한정하고 있어 거액
결제가 안되는데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15개국 금융업체나 통신업체들이 몬덱스사("몬덱스"는 회사
명임과 동시에 카드 이름)와 제휴교섭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스마트카드와 관련한 기술과 노하우를 획득하려는 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스마트카드 이용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영국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등 유럽 각국에서는 50만명이 현금대체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구내식당에서 요금을 계산
하는데 스마트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방안으로
스마트카드를 활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금년초 통산성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이용해 대금을 지불하는
"전자상거래" 실험이 시작됐다.

실험에는 호텔 철도 백화점 슈퍼마킷 출판사 등 3백50개 업체와 50만명의
소비자가 참여했다.

실험의 지향점은 현금 대체물인 스마트카드마저 필요하지 않는 사회, 즉
"현금없는 사회"이다.

"현금없는 사회"

주도권경쟁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 지불시스템" 기술표준화를 둘러싼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경쟁이 한
예이다.

양사는 지난해 6월 인터넷을 통해 자금을 결제하는데 필요한 표준기술을
공동개발키로 합의했다.

카드업계 리더인 양사가 공통기술을 개발하면 이 기술이 세계표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들은 1백여일만에 갈라섰다.

비자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독자개발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맞서 마스터카드는 IBM 네트스케이프 사이버캐시 GTE 등을 기술개발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현금없는 전자거래의 가장 큰 취약점은 안전성이다.

전자금융시대를 앞당기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계표준기술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카드가 대금결제수단으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

"현금없는 사회"가 되면 금융국경도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신용도가 높은 외국 금융기관을 선호하는 고객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