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명제가 통용되지 않는 시장도 있다.
요즘 태국의 자동차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태국의 중산층들은 자동차를 살 때 실용가치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실용가치로 따지자면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자동차가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게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걸어 다니는만 못하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요즘 태국에서 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특히 고급외제승용차 수요증가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실용가치를 이미 뒷전으로 제쳐둔 태국의 자동차소비자들은 보다 값이 비싼
외제승용차를 선호한다.
소비자의 구매력에 맞춰 자동차시세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가격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로버사가 최근 태국시장에 선보인 4륜구동 신차 "레인지로버"는
소비자판매가격이 400만바트(16만달러)에 이른다.
이 차는 시판되자마자 고객들이 돈가방을 싸들고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로버의 태국딜러는 주문이 폭주하는 원인을 지금까지 태국시장에 시판된
로버모델중 가장 비싸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로버모델의 판매가격은 최하 5만2,000달러에서
최고 16만달러로 외제승용차중에서도 고가에 속한다.
그러나 지난 94년에 로버의 판매대수는 1,206대로 한해전 보다 3배나
늘어났고 지난해에도 2,000대이상 팔려 2배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독일의 고급승용차메이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해 태국에서 1만3,500여대
의 승용차를 팔아 전체시장의 8.4%를 점유했다.
벤츠가 해외시장에서 8%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은 지난해 태국시장에서 처음이다.
벤츠는 올해에도 현금일시불 구매고객에 대한 가격할인 혜택과 66개월
분할납부제등을 시행해 태국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포드자동차의 태국지사장인 캐니스 브라운은 "교통정체로 차안에서
수시간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이면서도 태국 국민들의 자동차소유욕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며 태국중산층에 대해 "자동차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고급외제승용차의 판매급신장은 교통체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주범
으로도 꼽힌다.
그래서 태국정부는 최근 자동차세와 휘발유 소비세를 올려 자동차수요
억제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급외제승용차 판매점으로 몰려드는 행렬은 좀처럼 줄지않고 있다.
<박순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