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

병자년의 새해가 시작됐다.

새로운 세기가 4년 앞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시대의 본격적인 전개에 앞서 세기말에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돈, 기존질서의 붕괴로 인한 불안, 미래예측에 대한
불확실성때문에 올해도 대.내외적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해가 될 것 같다.

우선 대외적 여건을 살펴보면 세계 경제질서는 각국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작년에 창설된 WTO(세계무역기구)는 경제규범의
범세계화를 더룩 가속화시킬 것이다.

WTO에서는 그린라운드를 필두로 하여 세계 공동규범의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경쟁정책, 근로기준, 연구개발 지원, 부패방지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러한 시도는 동일한 경제규범하에서 세계각국이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이 지역 경제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APEC등 역내
지역주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세계화와 함께 진전되고 있는 정보화로 인해 범세계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그 핵심은 생산 유통 자원과 부품조달, 정보, 통신, 그리고 전문가의 공유,
노동력의 이동에 이르기까지 지구차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드높이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분초를 다투는 "시간경쟁"이라는 새로운 경쟁조건을 창출
하고 있다.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속에서 국내경제 여건의 불안정성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경기흐름이 불안하다.

국내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물가 상승압력이 큰 소비와 건설
투자등의 내수부문이 점차 경기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첩되어 나타날 총선과 문민정권의 임기말 누수현상, 그리고 민주
노총의 설립에 의한 노사갈등은 정치.사회현상을 불투명하게 할 것이다.

이때문에 국내 경기의 향방은 더욱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경기하강은 경제의 이중구조화를 더욱 극명하게 만들어 경제 불안을 가중
시킬 것이다.

금융환경도 어지럽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가 실시되고 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율화가 진전되면
시중 자금의 흐름이나 환율, 금리, 물가의 조절이나 안정성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지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경제의 성장기반이 불안하다.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소득 1만달러시대"는 경제발전 단계상 성장전략의
변화를 요구한다.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1만달러 시대를 기점으로 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완전고용의 도달과 인구의 고령화, 또 교통.환경문제로 인한 성장비용의
증가, 그리고 국민의 욕망수준의 변화등이다.

이같은 문제는 이제까지의 성장기반을 약화시킬수 있기 때문에 전략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의 정책과제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안정 기반을
구축하는데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성의 제고와 조화의 묘로서써 경제를 운용해야 한다.

경제의 불안정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때
제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확립될 때 얻어진다.

그간 정부는 많은 개혁정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정책효과가 반감되는 부작용을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정책의 비젼이 불투명하고 일관성이 결여됐던 탓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정책효과의 반감은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의 조화를 추구할 때 경제의 안정화는 이룩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올해 경제운용의 초점은 경기의 완만한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성장과 안정정책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국내 경기가 정치.사회적 충격에 매우 민감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감안해 정치상황과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일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미시적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경기의 이중구조화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화학 공업과 경공업의 균형있는 발전과 조화를 도모하는 측면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개방 경제체제에 대응하는 통상정책 역시 세계 무역질서의 대세와 조화
되도록 운영돼야 한다.

새로운 세기는 창의와 자율이 존중되고 개인과 기업이 가장 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식사회이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근본적으로 해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경유착의 부패구조가 소멸되고 기업도 창의력을 발휘해 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우리나라에 정치적 이유때문에 반기업적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자년 새해에는 선진국 도약을 위한 주역으로서 기업을 앞장 세우는
"기업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