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를 살리자"를 96년 우리의 화두로 삼자.
돌아보면 지난해는 증시가 철저히 기만당한 한해였다.
속인 사람은 없었지만 누구나 속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주가요, 속빈
강정같은 투자수익이었다.
그러나 올 한해는 새로운 기원을 해보자.
정치가 살아나고 경제가 연착륙하는, 그래서 무엇보다 주가가 훌쩍 뛰어
올라주면 좋을 터이다.
주가가 오르되 소액투자자들이 더 활짝 웃는 한해가 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증권회사 직원들도 투자자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월급을 차압당하지 않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꿈꾸어 보자.
기관투자가들 역시 수천억원의 평가손을 떨어내고도 수익을 올려 연말엔
펀드매니저들도 두툼한 보너스 봉투를 받을수 있기를 기대하자.
그러나 떠나가는 증시를 돌아오는 증시로 만들고 투자자들이 그나마의
위안을 받도록 하는 것이 덕담만을 주고 받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주가상승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일시적으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증시 기반이 튼튼해지지 않는다면 주가는
다시 꺼져버리고 말 것이다.
증시가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기위해서는 투자자들은 물론 정책당국자들의
발상전환도 필요하고 증권시장의 제도와 관행 역시 시급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주식을 팔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이젠 지쳤어요.
물론 주가가 오르면 또 마음이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또 곤욕을 치를 것 같아요" (서울 관악구 김영미씨)
"투자자들이 봉 아니오.
주택은행 경우를 보세요.
정부가 예산으로 처리할 일까지 투자자들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습니까.
주택건설 업자들을 돕겠다지만 주택은행 대신 중소기업을 10개 더 공개해
주면 이회사와 관련된 1백개의 중소기업들이 "아이구 하느님"할 겁니다"
(기업 공개를 기다리는 중소기업S사 안사장)
물론 이들의 주장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불만수위가 전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의 불만이 증시에 대한 환멸 그자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종합과세를 앞둔 시중 자금의 움직임만 봐도 알수 있다.
지난해 4조원이 넘는 시중 부동자금은 모두 채권이나 보험 상품으로
몰려갔을 뿐 주식시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우리사회의 기둥인 중산층들이 증시를 백안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증권 당국마저 "증시의 기관화 현상"같은 그럴 듯한
용어로 개인투자자의 감소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가 없는 증시는 물이 마른 연못같은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배당만해도 마찬가지다.
기업 수익이 아무리 늘어나도 배당금은 제자리를 맴돌아 시가와 비교할
경우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니 주식을 팔 사람만 있고 살 사람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증권사 직원들의 투자정보전달이 불법 루머 유포로 몰리기도 하는 반면
기업의 원천적인 회계부정은 눈감아주는 증시라면 투자자는 봉일 수밖에
없다.
새해에는 이런 문제들을 고쳐가자.증권시장 자체를 공급자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뜯어고치고 투자자들을 왕으로 모시는 그런 시장을 만들자는 말이다.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다운 시장, 활기찬 시장,
왁자지껄한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 정규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