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경기가 연착륙(soft landing)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경기연착륙이란 말그대로 경기가 충격없이 하강하는 것을 뜻한다.

경제성장률이 2~3%에 불과한 선진국에서는 경기가 침체되어 갑자기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면 이를 충격이 크다는 의미에서 하드랜딩(hard
landing)이라고 하며 성장률이 소폭 감소하여 충격이 작은 경우에는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성장률이 9%전후가 되는 경우에는 92년에 경험하였
듯이 5%이하로 급격히 하락하면 이를 충격적인 경기하강으로 받아들여
하드랜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하강하되 7%대로 안정되면 이는 견딜만 하다는 의미에서
소프트랜딩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8차에 걸친 경기순환을 경험했으며 현재 9차순환에
들어있다고 보인다.

이번의 경기순환은 93년 1월을 저점으로 하여 상승하기 시작한 것으로
지금까지 거의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순환이 정점을 넘어섰거나 이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하강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문제는 하강을 하되 어떠한 모습으로 하강하느냐가 관심사인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경기변동은 왜 일어 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자.

자본주의 경제의 변함없는 특징의 하나는 경기가 순환한다는 것이다.

경기순환이 일어나는 이유를 주류경제학은 투자와 소비의 특성에서 찾는다.

투자라는 것은 기대수익률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수익률이 높을때
증가하게 된다.

일정액을 투자하게 되면 기계가 마모하여 재투자할 때까지는 상당기간
투자가 소강상태를 유지하게 되기 때문에 투자는 순환한다는 것이다.

기계마모기간이 지난후 재투자하게 되면 그때 다시 투자수요가 증가해
경기가 상승할 것이다.

제 2차세계대전전 자본주의경제는 대체로 7년 주기로 일순환을 하는 경향이
나타나 이를 "주글러 사이클"이라 하였는데 이는 투자와 재투자간의 기간이
주로 한순환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만이 경기적인 것은 아니다.

수요중에는 소비수요도 경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있다.

일상적으로 소비생활에 필요한 비내구소비재의 수요는 경기에 그다지 영향
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동차나 가구 냉장고 등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는 경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모딜리아니 등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내구소비재에 대한 소비는 소비자의 평생소득의 일정 배수
만큼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평생소득이란 소비자가 매년 자기의 급여를 기준으로 평생소득을 추산하는
것으로 그것의 연평균 소득외 일정배수, 예컨대 1.5~2배 금액의 내구소비재
를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기가 좋아 급여가 올라가면 평생소득
추정액이 증가하여 그것의 1.5~2배 만큼의 내구소비재를 보유하기 위하여
그 구입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를 급증시켜 내구소비재 생산을 촉진하고
고용을 늘리며 경기를 상승시키게 된다.

반면에 경기가 침체되어 급여 증가율이 낮아 평생소득에 대한 전망이
낮아지는 해에는 그만큼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급락하여 경기를 침체
시키게 된다.

이같이 투자와 내구재 소비가 갖는 특성으로 경기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경기순환은 정부가 경제에 전혀 간섭을 하지않아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경제에 이런 저런
간섭을 하고 있다.

즉 경기가 하강할 때 정부가 경기를 진작시키는 정책, 예를 들면 통화증발
이나 정부지출을 증대시켜 하강속도를 제한하거나 상승으로 반전시키고
경기가 과열일 때에는 금융긴축을 통하여 경기과열을 억제한다.

이같은 경기조절정책을 주장한 것이 케인스 학파였고 오늘날 많은 정부가
정도차이는 있지만 이같은 정부개입을 하고 있다.

70년대 통화주의자들은 케인스 학파의 이러한 주장이 오히려 경기순환을
왜곡하여 경제를 불안정하게 한다고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정부는 일정규모의 통화증가 목표를 미리 정하여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를 잘 지키기만 하면 경기는 자체적인 순환법칙에 따라 안정적으로 순환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합리적 기대론자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국민이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행동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경기에 개입하지 말고 예측가능한 통화정책을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기변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투자 소비, 그리고 정부의 정책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변수들만을 고려하여 내년도 우리나라 경기를 전망해 보면
아마도 이번의 경기하강은 소프트랜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내년에 투자가 줄고 수출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소비와
해외경기가 건실하여 수출증가율이 둔화된다 해도 두자리 숫자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정책도 지금 뚜렷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정국의 불확실성이다.

정국이 불확실하면 모든 경제적 조건이 양호해도 투자가 지연되고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금리나 환율등 경제변수를 무력하게 할 수도 있다.

소위 기업환경이 불투명하여 경기가 급강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비자금 및 5.18특별법 정국이 어떠한 충격을 줄것인가는
미지수이다.

이 변수가 경기에 특별히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내년도 경기는 연착륙이
확실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