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5위의 컨테이너 처리실적률을 자랑하는 부산항이 3류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부산항이 물동량이란 외형에 비해 부두시설은 보잘것 없는 겉만 번지르한
빈껍데기에 불과해 세계 항만과 비교가 되지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98년 운영 예정인 부산항 4단계 컨테이너부두외 2011년까지
부산항 개발이 전무해 경쟁항만에 비해 경쟁력이 점점 뒤떨어질 형편이다.

부산항은 우선 하드웨어인 부두시설 측면에서 치열한 경쟁상대인 싱가폴
카오슝 등에 비해 매우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부산항 컨테이너부두의 현주소는 선석수 7개, 선석길이 2,162m, 하역시설인
겐트리크레인(G/C) 15기, 컨테이너야드 86ha다.

반면 싱가폴항은 선석 31개, 선석길이 5,319m, G/C 92기, 야드 259ha며
고베항은 선석 27개, 선석길이 6,085m, G/C 49기, 야드 358ha다.

홍콩항은 17개 선석, 선석길이 5,319m, G/C 49기, 야드207ha며 카오슝항은
선석 19개(내년 28개), 선석길이 5,657m, G/C 41기, 야드216ha.

한마디로 부산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다.

오는98년 4선석규모의 부산항4단계 컨테이너부두 운영이 개시되도 선석이
11개에 불과하다.

급증하는 물동량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항만시설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올 부산항 컨테이너 처리량은 지난해보다
무려 25% 늘어난 4백7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개)로 추정되며
매년9% 증가해 오는2000년에는 6백70만TEU에 달할 것으로 전망이다.

부산항 체선은 최악의 상태다.

컨테이너선박의 체선율(부두에 접안하지 못하고 12시간이상 대기한 선박
비율)은 93년 5.1%,94년 7.5%에서 올들어 13%이상을 초과하고 있다.

평균 체선시간도 33시간이나 된다.

부두에 접안하기 위해서는 외항에 하루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선석점유율은 더욱 심각하다.

컨테이너전용부두의 선석점유율은 평균 85% 이상. 부두운영에 가장 적합한
선석점유율이 60%라는 연구보고서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사들에 대한 서비스가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올해초 일본 고베지진으로 고베항 물량이 부산으로 밀려올때 부산항은
오히려 방이 좁아 오는 손님를 내쫓는 기풍경을 연출했다.

또 대만의 양밍사와 중국과 흥아해운의 합작사인 코흥사의 선석요구에
대해 컨테이너부두 운영사인 부산컨테이너부두운영공사와 동부산컨테이너
터미널은 정기서비스를 신규개설할 경우 일정날짜에 선석을 비워야 하는데
도저히 여유선석이 없다며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즉 세계 각국 항만들이 선사를 유치하기 위해 펼치는 항만세일즈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이러다가는 기존 손님마저 부산항을 떠날 형편이다.

구주운임동맹(극동-구주항로 운임협정으로 22개국 32개선사 가입)은
부산항 체선심화로 선박운항에 차질이 빚어지자 후진국에 적용하는 할증료
를 부산항 입출항 컨테이너에 부과해 국제항 부산항으로서는 모욕적인
처사를 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부산항 체선은 결과적으로 물류비용 증가로 이어져 수출제품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가져오며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항만투자는 단순한 사회간접자본이 아닌 국가의 동맥으로 집중
투자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오는2011년 가덕도신항만 개발이 완료되면 부산항은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카오슝항이 내년에 9개의 선석을 신규개장하는등 경쟁항만은
날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기어가는 꼴같아 답답하다는 것이 이곳 부산항
관계자들의 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부산항에 대한 긴급수혈과 신항만
조기 개발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항만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을 정부는
곱씹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부산 = 김문권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