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던 국제 펄프가격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국제제지가격동향을 선도하는 미국 제지업체들이 이번달부터 펄프 공급
가격을 t당 50달러 내렸다.

일부에서는 이를두고 2년간의 펄프.제지산업 호황이 마침내 끝나가고 있다
는 조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조정에 불과할 뿐 호황이 끝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제지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

공장을 풀가동해도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펄프가격은 이같은 호황을 틈타 t당 5백달러 정도에서 2년만에 1천달러까지
폭등했다.

종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초 t당 4백20달러정도였던 신문용지가격이 최근에는 7백5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지난 여름부터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부 품목에서 주문이 주춤해지더니 가을로 접어들면서 값을 깍아주는
업체가 속출했고 뉴저지의 유니온캠프사같은 경우는 판지와 인쇄용지 주문이
감소하자 생산량을 줄이기까지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이 제지산업 호황이 적어도 96년
말까지 지속된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황이 너무 빨리
급변한 셈이다.

제지업계의 호황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펄프.종이류 값이 단기에
너무 급격히 올랐다고 지적한다.

또 내년에 수요가 회복된다 해도 지난 2년간의 호황이 재현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살로먼 브라더스의 제지산업 분석가인 칩 딜런은 전세계 펄프 생산능력이
내년부터 98년까지 연평균 3.8%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난 15년간의 연평균증가율 3.4%를 웃돈다는 것.

이에 따라 지금부터 97년까지 제지산업이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는게
그의 견해다.

제지산업의 경기침체를 점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설비능력 향상이다.

제지업체들은 지난 2년간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힘썼다.

전문가들은 주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향상된 생산성이 침체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미산림종이협회(AFPA)는 최근 미국의 올해 연간 종이류 생산능력을 9천6백
80만t이라고 밝혔다.

이 협회는 지난해에는 올 생산능력을 9천4백80만t으로 예상했다.

설비효율 향상으로 생산능력이 2% 가량 커진 셈이다.

메릴린치의 시장분석가 샤먼 챠오는 제지업계가 벼랑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공장가동률이 이미 93%선으로 떨어졌다면서 앞으로 2년간 펄프.종이류
값이 지난 2년간의 상승분중 75%까지 까먹을 것으로 예상한다.

펄프와 종이류 값이 머지않아 오름세로 반전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현재
시세가 약세인 것은 일시적인 조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조정국면은 길어야 6~9개월에 그칠 것이라는게 이들의 견해다.

이들은 지난 85,86년중 펄프와 판지 값이 떨어지고 신문용지 값이 보합세를
보이다가 87년 일제히 급등세로 돌아섰던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지업계 경영자들도 시황 전망을 낙관하고 있는 편이다.

이들은 펄프와 종이류 재고조정이 끝나면 시황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제지업계로서는 96년에는 올림픽 특수와 선거 특수도 넘볼 수 있다.

따라서 내년 1.4분기중에 펄프.제지산업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펄프제지산업이 호황의 끝에 서있는지 아니면 그 중간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지는 내년초쯤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열 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고 종이류 공급은
최근 수년간 부쩍 늘었다는 점을 감안할때 펄프.종이류 값이 빠른 시일내에
지난 2년과 같은 수준의 강세로 급반전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게 대체적
인 의견이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