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흔히 기술로 가득한 미래지향적 도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실리콘밸리가 의외로 시골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사는 언니도 처음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내렸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이 너무 파랗고 공기가 깨끗해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생각했다고.나와 언니는 에메랄드힐스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동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언덕이다. 다운타운 쪽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는 하나, 달걀 때문이다. 넓은 마당에서 닭을 키우며 집에서 낳은 알을 먹고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병아리 네 마리를 사서 키웠다. 하지만 첫 네 마리는 몇 달 후 핼러윈 밤, 닭장 문을 닫지 않은 탓에 들짐승에게 빼앗겼다.다시 귀여운 병아리 네 마리를 사다가 좀 더 애지중지 키웠지만, 또 닭장 문 닫는 것을 잊었다. 결국 검은 닭 한 마리만 남았다. 이 아이는 얼마나 영리한지 눈치도 빠르고 나와 의사소통도 가능했다. 맛있는 알도 매일 낳았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 ‘이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쓰다듬어 주며 많은 정을 쏟았다.그런데 어느 날, 옆집 이웃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밖에서 놀던 이쁜이를 자기 집 개가 물었다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화들짝 놀라 돌아왔다. 우리를 본 이쁜이는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처는 심각했다. 여러 동물병원에 연락했지만, 닭을 봐주는 병원은 흔치 않았다. 간신히 찾은 병원에서 이쁜이는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등에 깊이 물린 상처를 길게 꿰매고 기진맥진한 이쁜이를 보며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두 미국 대선 후보의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생각은 중요하다. 기후와 ESG는 산업, 국제통상, 금융 등 차기 정권의 정책을 지배하는 상위 통치 철학이기 때문이다. 한국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산업의 명운도 달려 있다.우선 화석연료. 트럼프 후보는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사기라고 일축한다. 석유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모아 놓고 당선 후 석탄·원유에 대한 생산 규제를 없앨 테니 선거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해리스 후보는 과거에는 친환경 노선이었으나, 최근에는 톤을 낮추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달 후보토론회 중 해리스가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 내 화석연료 생산이 최대치가 됐다고 자랑한 것이다. 친환경 기치의 이면에서 화석연료를 확대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주목해야 한다.바이든 산업정책의 핵심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어떻게 될까. 친환경 투자와 전기차 등 기후 관련 산업을 육성해 미국 경제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IRA는 해리스 당선 시 지속이 유력하다. 반대로 트럼프는 IRA를 반대, 집권 후 전기차 지원 등 바이든의 기후 대응 관련 정책 대부분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당선 시 그간 IRA 지원책에 따라 미국 생산 투자를 준비하고 있던 국내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에 불확실성이 커진다.중국과의 기후변화 관련 통상무역도 중요하다. 해리스는 미국 내 제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당선되자마자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마지막으로 ESG 공시
여행에는 삶의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 불운의 모든 변수가 비껴가야 가능한 것이어서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이 기적이라는 걸 깨닫는 게 여정이다.미국 서부 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내내 미술관만 다니는 여행. 게다가 그냥 수동적 관람이 아니었다. 미술관마다 향유와 기록을 위한 미션이 있었다. 미션을 수행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소통했다. 처음엔 낯설지만, 이 방식은 예술 감상에 퍽 유용했다. 시간을 아껴 조금 빨리 걷고, 많이 보고, 가득 담고자 애썼다. 멀리 간 만큼, 다시 오기 힘든 만큼 절실한 감상 욕구가 꿈틀거렸다.미국 서부는 모든 미술관이 광활했다. 대륙의 스케일과 자본의 힘에 압도될 지경이었다. 게티 뮤지엄은 온종일 머문다고 해도 다 보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술관 미션이다. 아예 어떤 주제를 갖고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 그렇게 그림 한 점에 대표성을 부여하고 그를 통해 전체를 기억했다. 소중한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악착같이 기록했다.로스앤젤레스(LA)에는 10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동부에 비해 훨씬 늦은 예술의 태동을 수량으로 이기려고 한 것인지 미국에서 제일 많다고 한다. 예술은 이렇듯 선진국의 지표다. 한국도 문화·예술을 위한 더 전방위적인 지원과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간 MOCA 미술관. 특별전에서는 기후 위기를 다룬 설치 작품 등을, 상설전에선 마크 로스코와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의 소장품을 전시했다.다음에 찾은 더브로드 미술관도 흥미진진했다. 부동산 재벌인 브로드 부부의 컬렉션을 볼 수 있다. 특히 유명한 현대 미술은 이곳에 다 있다. 제프 쿤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