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의 모토처럼 증권가에도
빛이 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안기부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말"뿐인 음지의 황제라면
이들은 권력도 유명세도 없는 진짜 그늘진 곳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주식투자를 꽤 했다는 일반투자자들도 잘 모르지만 어엿히 관련법에 의해
규정된 증권관계기관이 "증권예탁원"과 "증권금융".

배중길 증권예탁원 주식예탁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실물자산을
만지는 사람이다.

증권예탁원이 기관및 일반투자자들로부터 예탁받아 보유하고 있는 유가증권
규모는 현재 주식 95조원 채권 74조원등 모두 1백71조원규모.

그중 하루동안 주식예탁부를 통해 입출고되는 주식은 1천5백80만주가량으로
액면가 5천원으로만 계산하더라도 7백90억원이나 된다.

채권예탁부를 통한 일일 이동규모도 평균 2천1백30억원어치로 내로라하는
대형은행의 자산관리 담당조차 만지기 힘든 자산이 예탁원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주권 채권등 실물자산이 이동하다보니 값비싼 유가증권을 하나의
종이쪽지로 쉽사리 여기는 순간적인 방심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9월 증권예탁원이 한번 뒤집어 진 사건이 발생했다.

싯가 1조2천억원에 달하는 주권 6장을 예탁과정에서 분실한 것.

결국 이 유가증권이 증권거래소 지하 쓰레기통속에서 발견됨으로써 해프닝
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거액의 자산을 관리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증권예탁원 사람들은 증시라는 무대에서 투자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멋진 연기를 펼칠수 있도록 온갖 세팅을 담당하는 "보이지 않는
연출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증권금융은 55년 자금사정이 취약한 증권사들에게 자금조달을 원활히 수행
하자는 목적에서 닻을 올렸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증권금융의 역할을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다.

올해 실적만 봐도 9월말 현재 증권사에 빌려주고 있는 인수자금과 운영
자금대출잔고가 모두 1천2백52억원규모에 불과할 정도로 그 역할이 유명무실
한 상태다.

주식시장이 불황에 빠질때 긴급히 지원하는 주식매입자금 대출업무도 90년
을 마지막으로 잠자고 있다.

내년부터 5천억원규모로 10년만에 유통금융을 재개한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증권계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다.

모증권사 K부장은 증권금융입사 3년만에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케이스다.

"하는 일이 너무나 없어 좀이 쑤셨기 때문"이라는 이직의 변이 증권금융의
업무상황을 머리에 그리게 한다.

그래도 증권금융을 지탱케하는 업무가 공모주청약 예치금.

은행권이 일차적으로 담당했던 이 업무에 증권금융이 뛰어들 수 있는 기반
을 마련한 사람이 김정의상무(그당시 기획부장)다.

87년 재무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이후 주식시장에서 공모주열기가 몰아
치면서 현재 증권금융의 재원을 조달하는 일차적 창구가 됐다.

증권관계기관은 아니지만 "증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증권전산.

노후된 시설로 인한 갖은 고장으로 매매주문이 끊길때마다 증권계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곤 하지만 증권의 전산화를 위해 그동안 쌓아온 공헌을
무시하기도 힘들다.

12.12쿠데타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장태완 전수경사령관이
82년부터 89년까지 사장을 맡는 동안 공동온라인 시스템, 매매체결시스템을
구축하는 저돌적인 경영을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김준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