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고합 1228호, 병합1237호, 병합 1238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등
사건, 피고인 노태우" 18일 오전 10시2분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재판장인
김영일 형사합의30부 부장판사의 호명과 동시에 헌정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첫공판이 시작됐다.

재판부의 호명이 있자 노태우피고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흰색 솜옷속에 넣은 채 법정으로 입정, 방청석과 재판부에 차례로
고개숙여 인사를 한 뒤 피고인석에 섰다.

노피고인이 방청석을 향해 인사를 하자 법정 좌측 6째줄에 나란히
앉아있던 아들 재헌씨와 정해창전비서실장, 서동권전안기부장, 최석립
전경호실장, 박영훈비서관등 측근 인사들도 따라서 목례를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노피고인에 이어 이건희삼성그룹회장과 김우중대우그룹회장도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노피고인 옆에 섰다.

이 사이 노피고인은 인정신문이 끝난 뒤에야 착석토록 돼 있는 법정내
규칙을 몰라 자리에 앉았다가 재판장이 "노태우피고인 일어서십시오"라며
딱딱한 음성으로 제지하자 다시 일어섰다.

전직 대통령도 사법부의 권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재판장은 이어 최원석 동아그룹회장, 장진호 진로그룹회장,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을 둘째줄에 서도록 했으며 곧 이어 김준기 동부그룹회장,
이건 대호건설회장, 이현우 전경호실장, 금진호 의원, 김종인 전경제수석,
이원조 전의원, 이경훈 (주)대우회장, 이태진 전경호실경리과장 등이
차례로 호명돼 셋째줄에 섰다.

끝으로 호명된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은 구속집행정지상태임을 반영하듯
법정 정리의 부축을 받은 채절뚝거리며 입정했다.

피고인 15명이 모두 법정에 들어서자 재판장은 "재판에 앞서 국민여러분을
위해 재판 이외의 행사를 하겠습니다"고 운을 뗀 뒤 "법원조직법 제59조
2항에 따라 재판부의 직권으로 TV카메라 기자 1명과 신문 사진 기자 1명이
약 40초간 피고인들의 뒷 모습을 촬영하도록 허가합니다"며 사진촬영 시간을
부여했다.

재판장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방송용 ENG카메라가 피고인석을 비롯,
법정내 구석구석을 숨가쁘게 담아갔으며 신문용 카메라의 플래쉬도 이에
뒤질세라 수십차례에 걸쳐 플래쉬를 터트렸다.

1분이 채 안된 사진촬영이 끝난 시각은 10시 6분.

재판장은 "피고인들에 대한 인정신문을 시작합니다"고 선언한 뒤
"인정신문을 마치는 대로 피고인들은 자리에 앉으시오"라고 명했다.

"피고인 노태우" 노피고인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본적이 어딥니까"

"대구시 동구 신용동 596번지입니다"

"주거지는"

노피고인은 "주거지"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예"하고 반문했다.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연희동입니다"

노피고인의 이같은 대답에 재판장은 짜증이 나는지 "연희동 어디입니까"
라며 재차 물었다.

"연희동 108번지로 알고 있습니다" 노피고인의 불분명한 대답에 재판장이
"기록에는 서울서대문구 연희1동 108의 17로 돼 있는데 맞습니까"라고
묻자 노씨는 "예,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노피고인은 청와대에 오래 거주한 탓인지 사는 집주소 하나 확인하는데도
재판장으로 하여금 세번씩이나 되묻게 하는 번거로움을 빚어냈다.

"현재 직업은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시죠"

"1932년 호적상으로는 12월 4일입니다" 노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을 끝낸
재판장이 "이제 앉으셔도 됩니다"라고 하자 노피고인은 이 말에 따라
착석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건희회장등 나머지 피고인 14명에 대해 호명했던 순서대로
<>본적 <>현주소 <>직업 <>생년월일의 순으로 인정신문을 계속했다.

인정신문중 노피고인외의 피고인들은 대부분 또박또박 답변을 해 나갔고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뒷줄에선 이현우피고인부터는 마이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4분여에 걸친 인정신문이 끝난 10시10분께 재판장은 검찰측에 피고인들의
기소요지를 진술해 줄것을 요청했다.

검찰측의 공판참여검사는 이 사건 주임검사인 문영호대검중수2과장을
비롯, 김진태.김필규 대검연구관, 홍만표 서울지검특수부검사 등 4명이며
이들은 10묶음의 두툼한 수사자료를 나눠들고 재판시작 10분전인 9시52분께
부터 자리를잡고 있었다.

재판장의 요청에 따라 문중수2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문과장은 아무런 사전설명이나 입장표명없이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요지를
확인하겠습니다"며 약 15분간 15명의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 노태우, 피고인은 88년2월25일부터 93년2월24일까지 대한민국의
13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기업활동에 대하여 직무상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를 이용하여 삼성그룹회장 이건희피고인으로부터
88년3월 서울종로구 효자동 안가에서 상용차 진출및 율곡사업등 대형
국책사업에서 삼성그룹이 유리하도록 해달라는 취지등으로 20억원을 받는등
모두 9차례에 걸쳐 2백50억원의 뇌물을 수수하고..,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으로부터..2백40억원을 받은 것을 비롯, 총35개 기업체의 35명이
대표로부터 2천3백89억9천6백만원을 수수했으며 .."

문과장은 노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을 낭독한 후 연이어 "같은
이건희는 삼성그룹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노태우에게 그룹 계열사들이
다른경쟁사에비해 불이익이 없도록 부탁과 함께.."라는 식으로 나머지
피고인14명의 공소사실을 차례로 점검해 나갔다.

검찰측의 공소사실 요지 발표가 끝난 10시24분께 재판장은 다음차례인
검찰측 직접신문에 들어가기 앞서 재판과정에 필요한 몇가지 사항을
피고인들에 주지 시켰다.

재판장은 먼저 "피고인들은 재판을 받는 동안 개개의 신문에 대해 이익이
안될 경우 답변 안 할 수 있고 유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진술할 수 있으며
재판 진행중 주소가 변경되면 신고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변호인석으로 얼굴을 돌려 "뇌물죄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진술이 뇌물이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사실심리중 뇌물성
여부를 따지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뇌물성 판단여부는 차후에 하겠으니 기초사실의 신문이 먼저
이뤄지도록 협조해 달라"며 "사실심리가 끝난 뒤 뇌물성 여부를 따질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오전 10시26분께 "검사는 직접 신문을 해주십시요"라는 재판장의
말은 받은 문과장은 "피고인에 대한 신문사항이 2백여개가 넘기 때문에
가급적 간단명료하게 답변해줬으면 좋겠습니다"며 노피고인에 대한 직접
신문에 들어갔다.

노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은 1시간 40여분이 지난 지난 오후12시 13분께가
되서야 끝났다.

< 윤성민.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