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중심에 있는 경산에 오르면 명대와 청대때 영화를 누린 자금성
(고궁)등 시내가 눈아래에 펼쳐진다.

고궁의 황금색 기와지붕이 연결된 남쪽과는 대조적으로 북쪽엔 회색지붕과
벽이 퍼져있고 "호동"이라고 불리는 골목길에는 백성들이 처마를 나란히
하고 생활하고 있다.

골목 중간에 있는 안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4채의 건물이 들어선
전통적인 주택 "사합원"에선 노인들이 쪽걸상을 가지고 나와 장기를 두고
애들이 밥을 짓는 어머니의 주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개혁개방정책이 가져온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수도 북경도 재개발붐
이 일어 호동의 여기저기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는등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노신이 1920년 당시 살면서 명작 "아Q정전"을 썼던 낡은 집도 재개발로
허물어질 운명에 처해있다.

경산으로부터 서북쪽으로 3 정도 떨어진 팔도만호동에 그가 살던 집이
있다.

노신이 고향 소흥으로부터 모셔온 어머니, 동생 주작인, 원인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이 호동에 지금은 30세대 1백여명이 븍적거리며 살고 있다.

건축물은 여러해 끊임없이 개조됐지만 그 시절 추억을 그릴만한 모습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다.

노후주택이 나란히 서있는 이 일대가 재개발의 대상이 됐다.

주민들은 시가 준비한 교외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든지 보상금을 가지고
물러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 사람들은 "낡은 주택이라도 장기간 살았기에 애착이 있다. 아파트로
이사하면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큰일이다. 이웃끼리의 사귐도 지금처럼 쉽지
않다"고 이사가기를 꺼리고 있다.

제일 나이 많은 장숙진씨(75)도 "적어도 로신이 서재로 쓰던 방만은 남겨
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정부방침을 어기면서까지 계속 버틸수는 없다.

또 주민들 중엔 "낡고 비좁은 잡거주택보다는 아파트가 낫다"고 쾌적한
살림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낡은 시가지가 사라지고 그 뒤엔 호텔및 오피스텔들이 세워지며 한국에도
드문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북경시에 남아있는 최고 노른자땅의 전통가옥이 시장경제의 파도에 밀려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모든 개도국이 경제발전과정에서 범해온 실수를 중국도 지금 범하려 하고
있다.

북경주재 서방건축전문가들은 "호동은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건축양식"
이라며 "경제발전은 옛 문화양식을 보전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호동이 너무 좋아 호동사진만을 평생 찍어온 카메라맨 서용씨도 호동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중의 하나다.

그는 호동에서 생활하고 싶어 아예 지난해 가을 호동을 안내하는 관광회사
를 차렸다.

인력거에 앉아 경산의 북쪽호동을 돌고, 사합원에서 차를 마시고, 옛날
그대로의 작은 집에서 경극(북경오페라)을 구경하는 반나절 관광여행은
고궁이나 만리장성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시민의
생활과 문화에 직접 와닿는다"고 하여 호평이었다.

그의 이 비즈니스도 오래 계속될 것 같지 않다.

역사가 새겨지고 백성의 생활이 배어있는 호동이 소실되는 것을 개혁개방의
당연한 앞날로 여긴다면 중국의 문화, 더나아가 동양의 건축문화는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 것인가.

온갖 전쟁과 문화대혁명의 광풍을 헤쳐나온 호동도 시장경제의 거대한
파도엔 맥을 못추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