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업체에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는 오아시스인가, 아니면
신기루인가"

소니와 도시바 진영으로 양분돼 DVD규격 표준싸움을 벌여온 세계전자
업계가 최근 "통일규격"을 확정, 내년부터 상품화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이같은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LG전자 삼성전자 등은 이미 통일규격에 부합되는 DVD플레이어를 개발,
소니 등 해외유수업체와의 초기 시장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이미 마친
상태다.

DVD는 지금까지의 VTR와 비디오CD(콤팩트 디스크)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개념의 전자기기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시장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업계일각에서는 DVD상품화에 대해 시기상조론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기술개발과 시장성의 함수관계"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DVD시장이 전혀 형성되지 않고 있는데다 소프트웨어 제조 등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굳이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하드웨어 제조기술을
개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같은 모습을 두고 국내업계에선 "투자의 효율성이 먼저냐 기술선점
효과가 먼저냐"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LG 삼성 등 DVD개발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업체들은 당연히 기술
선점효과를 꼽는다.

"남의 뒤만 따라다니다가는 평생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삼성전자
김광호부회장)는 주장이다.

예컨대 DVD의 경우 도시바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 제품과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면 잘해야 "만년 2등"의
자리밖에 차지할 수 없다는 것.

"DVD는 멀티미디어의 핵심기기로 기술발전속도가 빠를 것이 분명한데
탄탄한 기술력 없이 어떻게 기술경쟁으로 승부 할 수 있겠느냐"(LG전자
엄성현 영상미디어연구소책임연구원)는 얘기다.

쉽게 말해 자가용을 직접 몰고 가는 것이 버스를 기다렸다 타는 것보다
빠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시장을 주도할 만한 제품을 내놓기 위해선 자체기술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기술개발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부 업체에선 이같은 전략이 이상에 치우친 위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DVD자체의 시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투자효율성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시장이 일단 형성된 뒤 들어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

이들은 국내 전자업체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놓고 막상 시장창출엔
실패한 비디오CD(콤팩트 디스크)를 예로 들고 있다.

VTR를 대체할 수 것이라던 제품이 시장에선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전철을 되풀이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투자신중론자들의 이같은 주장의 밑바탕엔 "DVD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이 깔려있다.

그 방향은 가격과 소프트웨어 두가지다.

내년에 나올 DVD의 예상가격은 80만원선.

기존의 VTR에 비해 비싸다.

"가격이 최소한 40~50만원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DVD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요원하다"(대우전자 최계철이사)는 주장이다.

DVD타이틀의 부족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MGM 파라마운트 등 헐리웃을 중심으로 한 영화업체들은 타이틀의
유통체계를 기존의 VTR와 같은 대여중심이 아니라 판매를 고집하고
있다.

이 경우 "2천원정도만 내면 볼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놔두고 굳이
DVD타이틀을 사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최이사)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결국 자칫 잘못하면 시장을 선점하려다가 돈만들이고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으로서는 DVD의 전도가 너무 불투명해 "배팅"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시장이 형성된 뒤에 들어가더라도 기술제휴를 맺을 경우 결코
늦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비록 남의 뒤를 따라가는 모양이 될 지언정 중저가제품을 타킷으로
집중 공략하면 충분히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는 것.

결국 "투자효율성이 먼저냐 기술선점효과가 먼저냐"의 문제는 가격과
유통문제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제품이 나오는 내년 하반기나 돼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김재창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