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 산업현장의 노사분규 건수가 12년만에 두자리 수로 줄었다는
노동부 발표는 비자금파문과 경기냉각 조짐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경제계와
국민 모두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올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노사분규는 87건으로 연간 분규건수가 지난 83년
(98건)이후 처음으로 100건을 밑돌 것이라고 한다.

또 이는 노동부가 분규집계를 시작한 지난 75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서
올해 우리 산업계가 전례없는 노사화합을 구가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연초부터 노-경총간 중앙단위 임금합의가 무산된 데다
6.27 지방선거와 재야 노동세력인 민노총의 출범으로 그 어느때보다 노사
관계가 불안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전사회적 호응을 불러일으킨 노사협력 캠페인에 힘입어 산업현장
곳곳에 노사화합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노사 모두가 불필요한 갈등을 자제
하고 생산적 관계구축에 나섬으로써 예상과는 정반대의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같은 성과는 우리에게 참으로 값진 교훈을 준다.

주변 환경과 분위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사가 협력만 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없음을 입증한 셈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관계는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너무 많다.

노동운동의 방향이 협력적 생산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노사
상호간 신뢰의 기반이 다져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부당 노동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점이나 노동정책이 일관성과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런 점들을 하루 속히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사관계는 언제 또다시
악순환 속에 떨어질지 모른다.

특히 내년에는 비자금사건의 후유증과 5.18진상 규명, 민노총의 본격적인
활동개시, 총선 등이 겹쳐 노사관계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것으로 보여
철저한 사전대책이 요망된다.

뭐니뭐니 해도 내년 우리경제는 노사관계가 그 고삐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계의 분열로 노.노갈등이 예상되는데다 임금협상 시기가 총선과 맞물려
노사갈등이 사업장 밖으로 분출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 본사와 노.경총 주최로 잠실벌에서 열리는 "노사 한마당 대축제"가
단순한 축제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의 축제는 앞으로 닥쳐올 시련들을 굳건한 의지로 극복하겠다는 다짐의
장이어야 한다.

노사분규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노사관계의 질적-구조적 측면에서는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모두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업장을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노사가
함께 참여하고 성취하는 "삶터"로 바꾸는 일이다.

세계 경제전쟁이 더욱 본격화될 내년에는 노사 모두의 창의적 협조에
입각한 노사관계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