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은 지난 10월 19일 박계동민주당의원이 비자금
계좌존재를 폭로한 이후 47일만에 검찰의 중간수사발표로 사실상 일단락
됐다.

노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국회의원등에 대한 추가조사가 남아 있긴
하지만 노씨의 비자금조성경위와 규모등이 밝혀진 만큼 큰 고비는 지난
셈이다.

노씨의 비자금사건은 검찰이 10월20일 전면수사에 착수하면서 정계는
물론 재계에 전대미문의 파장을 일으키며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우선 헌정사상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데 이어 처음
으로 구속되면서 검찰수사의 성역은 없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이번 수사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됐다
는 지적이다.

국민들은 우선 노씨가 재임기간동안 조성한 뇌물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대통령이 국정운영보다 잿밥에 더 눈이 멀었다는 심한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특히 대통령이 청와대안에서 기업인들로부터 공공연하게 뇌물을 받아
금고에 보관했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이현우경호실장과 동서인 금진호민자당의원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불신은 정치권전반으로 확산됐다.

검찰이 밝힌 노씨의 뇌물규모는 4천1백89억원에 달한다.

지난 10월27일 노씨가 대국민사과성명에서 밝힌 5천억원보다 8백11억원이
적다.

4천1백89억원은 단군이후 매년 1억원씩을 모아도 못모으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특히 노씨의 재임기간이 5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노씨가 대통령직보다
뇌물모으기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나 할 정도이다.

이중 노씨가 대형국책사업을 발주해주는 대가로 기업체로부터 최고 2백
50억원에서 최저 5억원을 받아 총 2천8백38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대형국책사업이 있을때마다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씨비자금사건의 와중에서 재계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그룹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청사로 불려 갔다.

현대 삼성 LG대우 진로 롯데 등 대기업총수 39명이 매일 검찰소환을
당했다.

여기에다 기업자금관리 담당자등 4백명가량이 조사를 받았다.

재계 역사상 가장 많은 총수들이 검사앞에서 추궁당했다.

재계총수의 줄줄이 소환은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마치 재계가 뇌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처럼 매도당했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TV를 통해 전해지는 기업총수들의 검찰출두모습은
그동안 쌓아올렸던 국제공신력을 일거에 앗아갔다.

이 사건이후 재계는 기업윤리헌장을 제정하겠다고 나서 자성의 빛을
보이기도 했다.

재계는 차제에 정치자금제공 관행을 고쳐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계 또한 수사회오리의 한가운데서 생명이나 다름없는 공신력을 잃었다.

총 대부분의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이 압수수색대상에 올라 어수선했다.

노씨의비자금이 시중은행 곳곳에서 돈세탁창구로 이용된 것이다.

여기에 금융기관들이수신에만 지나치게 치중, 합의차명을 해주기도 했다.

합의차명의 불법여부를 떠나 국민들은 시중은행이 스스로 돈세탁창구로
이용하도록 허용했다는데 따가운 질책을 퍼부었다.

노씨의 돈관리와 부동산매입등과 관련된 계좌총수가 무려 5백여개에
달한다는 검찰수사결과 발표로도 시중은행의 "공범"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는 지적이다.

사회적으로 노씨 비자금사건은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는 선량한 서민들
에게 극심한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기업들이 뇌물제공을 대가로 대형사업을 수주했다는 소식은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의욕을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전직대통령의 뇌물혐의구속을 어린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혼란을 겪었다.

교사들은 우리의 전직대통령중에 퇴임이후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학생들의 질문에 낯뜨거워하며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 노씨의 구속에 이어 전두환전대통령이 12.12군사반란혐의로 구속수감
되면서 이같은 혼란은 더욱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이다.

이번 사건에 수사검사와 수사관을 비롯 총 92명을 투입했다는 외형적
총력체제못지않게 검찰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구속했다.

검찰은 이로써 검찰수사에 성역은 없다는 말을 입증했다.

아무튼 노씨 비자금사건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미증유의 파장과 후유증을
남겼다.

앞으로 남은 것은 이 파장과 후유증을 어떻게 슬기롭게 치유해 나가야
하는가이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