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60) 제7부 영국부에 경사로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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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비 원춘은 별채 원내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대관원, 볼 만한 것이 많은 아름다운 동산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면의 누각을 대관루, 동쪽의 누각을 철금각, 서쪽의 누각을
함방각으로 이름지었다.
그외 많은 곳의 이름을 지었는데, 일일이 다 열거 할수가 없다.
임시 편액에 적혀 있는 이름을 고쳐준 곳도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유봉래의는 소상관으로, 홍향녹옥은 이홍쾌록으로 고쳤다.
원춘은 대련도 두어 개 지었으나 스스로 시재가 없음을 아는지라 약간
쑥스러워 하였다.
그러면서 보옥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편액과 대련을 지어보도록
권유하였다.
영춘 탐춘 석춘 이환 설보채 임대옥 들에게는 후비 별채 원내와
관련된 편액과 대련을 하나씩 짓도록 하고, 보옥에게는 무려 네개의
편액과 네개의 대련을 짓도록 하였다.
원춘의 사촌누이 영춘이 먼저 글을 지어 원춘에게로 가져왔다.
편액은 광성이정 이었다.
넓고 큰 마음과 유쾌한 심정이라는 뜻이었다.
후비 별채 원내를 둘러보니 그러한 심사가 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내용의 대련도 지어 가지고 왔다.
다음은 원춘의 친누이 탐춘 차례였다.
편액은 만상쟁휘 였다.
탐춘은 후비 별채 원내에서 천만 가지 형상들이 서로 자기가 아름답다고
그 빛을 다투는 듯한 모습을 보고 그런 이름을 지었던 것이었다.
영국부 가경 대감의 딸 석춘의 편액은 문장조화 였다.
지극히 조화로운 풍경을 표현한 이름인 셈이었다.
일찍 과부가 된 원춘의 올케 언니인 이환의 편액은 문채풍류 였다.
아름답고 우아한 풍치라는 의미였다.
설보채는 영예는 빛나고 기쁨은 물결친다는 뜻인 응휘종서를 편액으로
삼았고, 임대옥은 세상 밖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인 세외선원을
편액으로 삼았다.
원춘이 그들의 글을 읽어보니 보채와 보옥의 글이 단연 뛰어났다.
그 둘 중에서는 대옥이 좀더 낫다고 할수 있었다.
대옥은 이번 기회에 여러 편의 시를 지어 글재주를 한껏 자랑하고
싶었으나 편액과 대련을 하나씩만 짓게 되어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
보옥처럼 적어도 네편 정도 짓도록 했으면 후비가 더욱 감복한 텐데
말이다.
대옥은 보옥이 글을 다 지어가나 하고 보옥 쪽을 쳐다 보았다.
그런데 보채가 벌써 보옥에게로 다가가 뭐라뭐라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대옥은 시기심으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일자).
대관원, 볼 만한 것이 많은 아름다운 동산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면의 누각을 대관루, 동쪽의 누각을 철금각, 서쪽의 누각을
함방각으로 이름지었다.
그외 많은 곳의 이름을 지었는데, 일일이 다 열거 할수가 없다.
임시 편액에 적혀 있는 이름을 고쳐준 곳도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유봉래의는 소상관으로, 홍향녹옥은 이홍쾌록으로 고쳤다.
원춘은 대련도 두어 개 지었으나 스스로 시재가 없음을 아는지라 약간
쑥스러워 하였다.
그러면서 보옥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편액과 대련을 지어보도록
권유하였다.
영춘 탐춘 석춘 이환 설보채 임대옥 들에게는 후비 별채 원내와
관련된 편액과 대련을 하나씩 짓도록 하고, 보옥에게는 무려 네개의
편액과 네개의 대련을 짓도록 하였다.
원춘의 사촌누이 영춘이 먼저 글을 지어 원춘에게로 가져왔다.
편액은 광성이정 이었다.
넓고 큰 마음과 유쾌한 심정이라는 뜻이었다.
후비 별채 원내를 둘러보니 그러한 심사가 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내용의 대련도 지어 가지고 왔다.
다음은 원춘의 친누이 탐춘 차례였다.
편액은 만상쟁휘 였다.
탐춘은 후비 별채 원내에서 천만 가지 형상들이 서로 자기가 아름답다고
그 빛을 다투는 듯한 모습을 보고 그런 이름을 지었던 것이었다.
영국부 가경 대감의 딸 석춘의 편액은 문장조화 였다.
지극히 조화로운 풍경을 표현한 이름인 셈이었다.
일찍 과부가 된 원춘의 올케 언니인 이환의 편액은 문채풍류 였다.
아름답고 우아한 풍치라는 의미였다.
설보채는 영예는 빛나고 기쁨은 물결친다는 뜻인 응휘종서를 편액으로
삼았고, 임대옥은 세상 밖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인 세외선원을
편액으로 삼았다.
원춘이 그들의 글을 읽어보니 보채와 보옥의 글이 단연 뛰어났다.
그 둘 중에서는 대옥이 좀더 낫다고 할수 있었다.
대옥은 이번 기회에 여러 편의 시를 지어 글재주를 한껏 자랑하고
싶었으나 편액과 대련을 하나씩만 짓게 되어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
보옥처럼 적어도 네편 정도 짓도록 했으면 후비가 더욱 감복한 텐데
말이다.
대옥은 보옥이 글을 다 지어가나 하고 보옥 쪽을 쳐다 보았다.
그런데 보채가 벌써 보옥에게로 다가가 뭐라뭐라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대옥은 시기심으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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