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같이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은행 신림동 테니스 코트에
모이기 시작한것이 벌써 20년에 가까워 오는가 싶다.

그 당시의 신림 테니스 코트는 한국은행안에서는 테니스 수준이 보통
정도는 되었고 다른 코트와는 다르게 정겨운 "2차"가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모인 사람들이 우리 회원들이다.

그간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코트는 여러 곳을 옮겨 다녔지만
구성원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2차"는 아직도 잘 지켜지고 있는 전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지방에 가 있다거나 몸이 불편하다거나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원들은 우리 테니스 코트에 나오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정이 들어 있다.

고속버스로 지방 나들이를 쉽게 할수 있었던 198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동료가 지방으로 전출되면 그 동료가 서울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한번쯤은 그 동료를 위로겸 약탈(?)하기 위해서 그 지방으로 습격도 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정력도 옛만 같지 못해 교통사정이
어려운 것을 핑계 삼아 지방 습격을 삼가고 있다.

내 기업으로 가장 최근에 지방 습격을 간 기억은 약 3년전 지금
충북은행장으로 근무하는 민형근 행장이 전무로 있을 때 청주를 가 본
것이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민 행장은 테니스 매너가 우리중에서는 제일 단정했는데 이렇게 테니스를
치면서 몸에 익혀 둔 것이 깨긋한 업무자세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이 한국은행을 떠나 서로 다른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삼복과 엄동에 구애 받지 않는 테니스를 이제
좀 삼가게 되었다는 점이나 그래도 작년에는 섭씨 38도의 더위를 테니스로
극복한 기록이 있다.

지금의 "2차"분위기가 옛날보다 화제가 더 풍부해진 것도 달라진 점일
것이다.

그리하여 감사원, 재무부, 상업은행, 개인기업에서 오신 회원들에게는
더 재미 있는 모임이 되었고 아직 한국은행에 남아 있는 회원들에게는
우리 경제를 더 잘 알게 되는 모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모임은 신림동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신림회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누구도 이름 짓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이제 굳이 이름을 지어 수풀이 울창한 보라매 공원안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테니스를 즐기는 즐거움에 흠집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우리 회원들은 감사원의 감사관 강형구 임영훈, 재경원의 이상연 조연구,
상업은행 감사및 OB로는 관리부차장 김응길, 연수원 김정오 안승옥. 감사관
홍성이씨 등이 있고, 한국은행및 OB는 강희문 감사실장 김주천 감사실
검사역 나해룡 민형근 박훈주 송병익 한미은행감사, 이광춘 대구지점과장,
이만식 감독원검사역, 이우업 한미은지점장, 정덕량 중앙리부사장, 지치본
충북은상무, 최근배 상호신용사장, 최승도 검사역, 허고광 국제부장,
허전(OB) 하평완 감독원부국장 등이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