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크레도스 전용생산공장인 아산제2공장.

이 공장의 생산라인에는여느 자동차공장에서 흔히 볼수있는
작업지시서라는 "종이"를 구경할수가 없다.

작업에 필요한 모든 정보사항이 라인옆에 설치된 TV모니터에 입력돼
있어서다.

작업지시서는 자동차 생산과정에서 일종의 "동맥"과 같은 거로 보면 된다.

기존의 자동차 생산공장들은 고객들의 다양한 선택사양 품목을 일일이
적은작업지시서를 만들고 그 요구사항에 맞춰 부품과 선택사양품목을 달리해
차를 생산하고 때문에 작업지시서에는 조립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는 셈이다.

지난9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아산제2공장은 이같은 작업지시서를
아예 없앴다.

공장 통제실(CR)과 연결된 TV 모니터가 작업지시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모니터에는 크레도스의 배기량과 차색깔을 비롯해 변속기가 수동인지
자동인지 그리고 선택사양 품목까지 작업자가 한눈에 알수 있도록 모든
정보가 입력돼 있다.

공장 통제실 컴퓨터는 일선 영업소를 총괄 지휘하는 본사와 직접 연결돼
있다.

그래서 일선 영업소에서 보내는 주문사항은 본사와 공장 통제실을 통해
생산라인의 모니터에 직접 전달된다.

그러니까 이 공장은 자동차업체 최초로 주문에서 생산까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전송되는 생산정보시스템(PIS)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생산공장에 생산정보시스템 도입이 늦은 것은 자동차의
부품가지수가 다른 제조품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첨단 시설이 가장 앞서있다는 전자제품의 경우 부품수가 2백개에
불과한 반면 자동차는 2만개에 이르고 있다.

차체에 들어가는 부품만도 4백개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생산공정자체가 워낙 복잡해져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기아의 생산정보시스템 도입은 이런 점에서 자동차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시스템 실시로 작업불량률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작업자가 작업지시서를 분실한다던가 A부품을 넣어야 할 자리에 B부품을
사용해 차를 완전히 못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으나 모니터가 도입된
이후에는 이런 "실수"가 완전히 사라졌다"(정완용이사)

지탱률이 크게 개선된 것도 성과다.

지탱률은 완성차가 출고된후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 발생되는 불량률을
말한다.

사람이 작업을 하는만큼 지탱률 발생은 불가피했다는 게 자동차
공장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생산정보시스템의 도입으로 지탱률이 과거에 비해 20%나
감소됐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물론 앞으로 보완해야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현 시스템으로는 정보의 리얼타임화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객이 처음엔 ABS(미끄럼방지시스템)를 주문했으나 나중에
선택사양을 취소했을 경우 공장의 담당라인이 그때까지도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고객의 주문에 맞출수가 있다.

그러나 고객의 정보변화가 출고되기 하루 이틀전에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출하장에 쌓여있는 차중에 고객주문에 적합한 자동차가 있나를 먼저
색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출고 직전의 차를 다시 해당라인으로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발생할수 밖에 없다.

일본 토요타처럼 완전한 주문생산방식을 시행하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기아의 정보생산시스템은 한국내 기존공장과 토요타의 "오더링
시스템"과의 중간단계에 머물고 있어서다.

고객과 보다 밀집할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을통해 한단계에 진전된
정보시스템의 구축작업이 과제인 셈이다.

<이성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