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비 원춘은 배를 타고 가면서 궁궐로 들어가기 전 집에서 보옥과
지내던 일들을 추억하였다.

원춘은 어릴 적부터 보옥과 함께 조모인 대부인의 손에서 자라났다.

아버지 가정은 주로 서재에 들어박혀 글만 읽고 있고 어머니 왕부인은
집안일들을 돌보느라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는데
대부인이 아이들을 챙겨주었던 것이었다.

원춘은 대부인으로부터 여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글들을 배워
아직 서너살밖에 되지 않은 보옥에게 자기가 배운 것을 가르쳐주곤
하였다.

그래서 보옥은 글방에 가기 전부터 수천 자의 글을 익히고 몇 권의
책을 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로서의 예의범절을 배우기도 전에 여자로서의 예의범절을
먼저 배우게 되었으니 보옥의 성격이 여자처럼 되어버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원춘과 보옥은 오누이간 이었지만,어머니를 잘 만날 수 없는 보옥으로
서는 원춘 누나가 어머니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보옥이 어머니 젖이 그리울 때는 슬그머니 원춘의 젖가슴을 어루만지곤
하였다.

그러면 원춘은 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보옥을 꼬옥 껴안아주었다.

어떤 때는 원춘이 보옥의 고추를 만지며, "우리 보옥이 고추 많이
컸네" 하고 놀리기도 하였다.

그러면 보옥은, "누나는 고추 없나?" 하고 원춘의 사타구니를 들여다
보려고 머리를 들이미는 적도 있었다.

하루는 보옥이 원춘에게 물었다.

"누나, 내가 정말 태어날때 구슬을 입에 물고 태어났나?"

"그럼. 네 목에 걸려 있는 그 구슬을 네가 입에 물고 태어났지"

"누나야, 나는 어디에서 나왔나?"

원춘이 보옥이 알아듣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한테서 나왔지"

"어머니 어디서 나왔는가 말이다"

결국 원춘이 실토를 하고 말았다.

"어머니 다리 사이에서 나왔다"

그러나 보옥은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어린 것이 징그럽게도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누나도 나중에 엄마만큼 크면 여기서 애기를 낳을 건가?"

보옥이 원춘의 다리 사이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이게, 조그마한 게"

원춘이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물리며 보옥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