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할때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랐던
기억을 맨먼저 떠올린다.

봄이면 풀피리 불고 나물 뜯으며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던 일, 여름이면
냇가에서 미역감고 매케하게 피어오르는 모깃불 옆에서 올려다보면
쏟아질듯한 밤하늘,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허수아비며 메뚜기,
파란하늘을 더욱 파랗게 보이게하는 빠알간 홍씨, 눈내리는 소리까지
들릴듯한 적막함속에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이 익기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나누던 옛날이야기며 귀신이야기들....

이러한 기억들은 모두 우리네 삶이 자연과 떼놓을 수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뿐만아니라 중소도시에서 자란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종류의 추억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자란 필자에게도 요즈음은 상상도 할 수없는 어렸을때의
추억이 있다.

세종로거리를 걸을때면 곧잘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고향이랄것
없는 고향을 가진 도시인에게도 향수로 남아있다.

반짝반짝 끊어진 듯 이어지는 선을 그으며 나르는 반딧불을 잡겠다고
허공에다 헛손질을 해가며 다니던 기억, 더노랗고 더 예쁜 은행잎을
줍기위해 수도 없이 집었다 놓았다하면서 토닥거리던 학교길, 사간동앞
개천에서 야채를 씻던 아주머니의 하얀 머리수건....

지금 돌이켜보면 언제 그런적이 있었나 싶도록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3.40대의 장년층까지도 경험했던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성장과 건설, 개발우위의 가치관으로 인해 그얼마나
많은 자연이 훼손되고 파괴되어 왔는가.

또 그속도는 얼마나 가속화되고 있는가.

70년대만해도 지금의 강남에서도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신도시가 개발되기이전의 분당은 농촌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자주가는 곳이 아니면 어리둥절할만큼 변해볼수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듯 도시건 시골이건 가리지않고 자연은 제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산업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 인구증가 등으로인해 이러한 변화는
피할 수없겠지만 이제 우리는 개발과 보존을 함께 행해야할 시점에
와있다.

먼 후손까지 가지않더라도 당장 내자식이 살아야할때를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의 추억속에 소중히 살아있는 이야기들과 내자식이 커서
할 수있는 이야기를 비교해보자.

도처에서 썩어들어가고 몸살을 앓는 자연을 보고 자라고있는 아이들이
이다음에 커서 되살릴 수 있는 자연은 어떠한 모습이겠는가.

환경오염의 영향과 피해에서 그어느누구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공기와 물이 오염되어가는 길은 곧 우리의
생명줄이 썩어들어가고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해의 기름유출과 적조현상이 그곳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우리
모두의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았던가.

내집앞만 깨끗하고 내고장만 괜찮다는 식의 생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위적으로 막고 돌려버린 강줄기의 해안선,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자동차길에 밀려 잘려져나간 산자락,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있는 대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돈이 많다고해서
잘려져나간 팔다리를 되살리지못하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없듯이
한번 파괴된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기술로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인 산을 만들 것이며 바다를
만들어낼 수있겠는가.

사람도 자연의 한부분인데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온갖 열정을 다하면서
그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인 이강산에 대해서는 무심할 수있겠는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불편하다는 이유때문에 눈감아두고 미룰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