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30년] (프로필) '동탑산업훈장'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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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신화건설 용접 반장>
19년간 해외건설현장에서 용접기능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근무자세로 현지인및 제3국인 노무자의 기술지도에 큰 공헌을 했다.
80년대말 국내 건설기능직의 높은 임금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이 뒤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기량이 미숙한 현지노무자들을 직접 교육시켜 공사에
투입, 원가절감에도 기여했다.
그로부터 훈련받은 현지 용접사들이 용접X레이 시험결과 99%의 높은
합격률을 보이는등 정성을 다한 기술전수와 화합노력으로 한국및 한국인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민간외교를 통해 국위를 선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인산비료공장 건설공사(89~91년) 당시 과로로 입원했을때는
파격적으로 발주처의 회장단이 병원을 방문, 그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부산해동고를 졸업하고 대림산업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신화건설에서 근무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5일자).
19년간 해외건설현장에서 용접기능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근무자세로 현지인및 제3국인 노무자의 기술지도에 큰 공헌을 했다.
80년대말 국내 건설기능직의 높은 임금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이 뒤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기량이 미숙한 현지노무자들을 직접 교육시켜 공사에
투입, 원가절감에도 기여했다.
그로부터 훈련받은 현지 용접사들이 용접X레이 시험결과 99%의 높은
합격률을 보이는등 정성을 다한 기술전수와 화합노력으로 한국및 한국인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민간외교를 통해 국위를 선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인산비료공장 건설공사(89~91년) 당시 과로로 입원했을때는
파격적으로 발주처의 회장단이 병원을 방문, 그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부산해동고를 졸업하고 대림산업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신화건설에서 근무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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