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냉면을 공짜로 드립니다" "비자금 1천억원을 제공합니다"

비자금파동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노태우전대통령이 구속된 16일 일부 음
식점들과 커피전문점이 손님들에게 냉면과 소주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1천억
원의 비자금"을 제공(?)하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관심을 끌었다.

송파구 삼전동에 자리한 "함흥냉면"(주인 안승근)은 "큰도적 노태우 구속하
는 날 냉면 소주 무료제공합니다"란 현수막을 일찌감치 내걸고 이날 오후6시
10분께 구속이 확정되자 약속대로 냉면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주인 안씨는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울분을 냉면과 소주에 달래길 바란
다"며 "더이상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우리도 정상적
인 영업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날 "함흥냉면" 집을 찾은 회사원 박동규씨(34)는 "87년 6.29선언 당시 명
동에 있는 소주집에서 무료로 술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때는 술맛도
나고 기분도 좋았는데 똑같은 사람으로 인해 똑같이 공짜 술을 먹는데도 흥
취감이 없고 술맛도 안난다"고 씁쓸해하며 이내 자리를 떴다.

또 명동 2가 코리아극장 맞은편에 자리한 커피숍 "도무스"는 손님들에게 무
려 "1억원의 비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 커피숍의 이병국씨가 흰 편지봉투에 1천원권 지폐 1장을 담아 "비자금 1
천억원입니다. 유용하게 쓰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손님들에게 건네준다는 것

이같이 "보통사람"으론 상상도 못할 거액(?)을 건네받은 손님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라고.

"이거 진짜 돈이예요?"라며 의아해하는가 하면 "마침 통치자금이 부족했는
데 잘됐군요"라며 노전대통령을 빗대거나, "1천억원도 별거 아니네"라며 노
씨로 인해 실종된 돈가치를 풍자하기까지 다양하다는 것.

이씨는 "수천억 규모의 비자금과 관련한 보도가 연일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
며 무력감에 빠진 시민들을 잠시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고 진
짜 "보통사람"에 대한 비자금제공 경위를 진술했다.

<김남국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