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검찰의 기업인 조사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당초 30~50대 대기업들을 상대로 노씨가 밝힌 "5천억원 비자금"의
총액 규모를 확인하는 한편 뇌물성 자금이 어떤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규명하려 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 노씨의 비자금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는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으로부터 노씨에게 돈을 준 기업인들과 그 자금액수가
적힌 "리스트"를 확보한 만큼 5천억원 조성경위를 파악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자신해 왔다.

따라서 기업인조사는 이를 확인하는 수순에 지나지 않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떤 돈을 뇌물로 볼 것인가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자신감이 기업인 조사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검찰은 지난 7일 장진호진로그룹회장을 필두로 돈 준 기업들한 수사를
시작한 지 7일이 흘렀으나 이들로부터 확인한 노씨의 비자금 액수는
5천억원은 커녕 3천억원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조사한 30명중 26명이 30대대기업군에 속하는 기업의
총수들이어서 검찰은 자칫 수사의 1차목표인 "5천억원 조성경위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의 이같은 고민은 지난 12일 안강민대검중수부장의 오후 브리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안중수부장은 "노전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국영기업체, 은행, 대형호텔 등에 대한 조사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일단 수사선상에만 떠오르면 모두 소환조사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물론 안부장의 말을 물론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별뜻 없이 대답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팀에서 최근 "검찰이 50개 기업을 모두조사한다해도 노씨
스스로 밝힌 "5천억의 비자금"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간간히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즉, 검찰은 우선 5천억원의 조성경위를 맞추기 위해 조사대상을 가리지
않고 "구린내"가 나는 곳은 모두 들춰볼 수 밖에 없는 실정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1차적으로 포철이나 한전과 같은 대형 국영기업체에 수사의
칼날이 뻗칠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포철신화"를 이룬 박태준전민자당최고위원의 하청업체 39억원수뢰사건과
안병화전사장이 연루된 한국전력 원전수주 비리 사건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듯이들 국영기업체 역시 정치자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국영기업체는 정부와 밀착돼 있을 수 밖에 없고 독점적 지위로
인해정책 결정때마다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켜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형 국영기업체 역시 30대 그룹만큼은 줬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금융권의 경우는 이 사건초반부터 말이 나왔다.

노씨 비자금 은닉처중 최초로 발각된 신한은행의 경우, 6공의 특혜를 입어
고속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93년 4월의 동화은행 사건에서 드러났듯 6공 들어 문을 연 동화, 하나,
보람, 평화은행등도 은행설립및 행장 인선과정에서 상당한 비자금이
건네졌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국영기업체나 은행등에 대해 갖게되는 "심증"과 검찰의 "조바심"을
감안할 때 기업인 조사가 30~50대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국영기업체나
금융권으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