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홍 <경총 상임부회장>

노동부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었던 "근로자 파견법"제정이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과 야당의 반대, 그리고 민자당의 유보 결정으로
당분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제관계법은 경제논리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이 문제를 정치논리보다는 경제논리에 비중을 두고 하루속히
재검토해야 한다.

근로자파견법 제정의 필요성은 경제환경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80년대 이후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서비스화가 진행되면서 수요변화에 신속
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 생산방식이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고용구조를 정규근로자와 비정규근로자로 분화시켰고,
그 결과 고용의 유연성 확보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노동력이 고학력화-여성화-고령화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편리한 시간과 장소에서 파견근로자로 근무하고자 하는 인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같이 노동시장의 수급상황이 바뀜에 따라 파견근로가 자연스럽게 발생
하여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근로자 파견제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여 노동시장의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오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선진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모든 분야에서 제도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근로자파견법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는 당위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법의 제정을 위해 적극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여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첫째 노동계가 법제정의 반대이유로 내세우는 임금의 중간착취, 고용불안
등의 요인은 파견근로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파견 사업체가 중간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받음으로써 파견근로자의 임금을
착취한다는 오해는 현재 근로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
한다고 볼수 있다.

파견근로를 불법으로 방치하는 한 이러한 오해는 계속될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도 법제정이 요구된다.

그리고 기업이 파견근로자를 사용한다고 해서 파견근로가 무한정으로 늘어
나는 것은 아니다.

상시고용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파견근로는 주로 전문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업무 또는 특수고용관리가
필요한 업무 등 특별한 경우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할수 있으나 전체 취업자중
파견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에 불과하고 더이상 늘어나지 않는
추세이다.

그러므로 파견근로가 상시고용을 대규모로 대체하여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하겠다.

노동계는 관념적인 피해의식에서 탈피하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법제정이 요구된다.

고임금-저성장시대에 처한 오늘날 기업의 인력관리는 양적관리에서 벗어나
질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소수정예주의 인력관리는 기업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모든 업무를 정규직으로 고집하면 기술혁신과 경영합리화 자체를 방해하고
기업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도태된다.

기업은 핵심인력을 정예화하고 주변인력은 외부화함으로써 과도한 인력
보유를 피하고 필요한 인력서비스를 수요에 따라 신속히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현실적으로 간과할수 없는 파견근로자의 보호라는 측면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000여개의 파견업체로부터 10만여명의 근로자가 많은
기업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파견근로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이미 노동력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산업사회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아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법적인 권익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파견근로자의 기본권 보장과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법제정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유보된 노동부의 입법내용 자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나치게 규제일변도로 돼있어 보다 탄력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노동부가 추진중인 파견법제정 내용은 파견대상 직종과 파견기간을 크게
규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때는 노조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또한 위반시 과도한 벌칙규정도 담고 있다.

이는 노동계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어 마치 노동계의 반대를 무마
하기 위해 파견사업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근로자파견법은 법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제정되어야 한다.

규제 일변도로 제정되면 기존의 고용형태가 더욱 왜곡되고 경직화되어
고용의 탄력성을 저해함으로써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될 것이다.

파견법제정에 있어서 근로자 보호라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파견사업의
지나친 규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부의 법안내용중 파견대상직종과 파견기간에 대한 규제등은
깊은 검토가 필요하며 원칙적으로는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즈음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없었다면 이는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제도가 정비되어 있어야 불법과 탈법을 발견하고 방지할수 있는 것이다.

근로자파견법도 제도정비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