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가뜩이나 어려운 문화예술계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장기불황에 시달려온 출판.미술계의 고객이 뚝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연극과 음악 등 공연예술계도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다만 비자금사건과 묘하게 맞아떨어진 세태풍자극이나 "성역은 없다"등
일부서적만이 마음의 길을 잃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형편이다.

비자금사건으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상황을 분야별로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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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

출판계는 안그래도 힘든 마당에 비자금사건까지 발생, 넋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출판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발생전에 비해 책판매량이 하루평균 10-20%
가량 떨어졌다는 것.

특히 경제.경영서보다 문예물의 타격이 심하고 신간의 경우 반응이
이전보다 훨씬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온국민이 비자금사건 보도에만 관심을 갖는 바람에 독서시간은 상대적
으로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동화은비자금사건 수사 일화 등을 공개한 함승희씨의 "성역은
없다"(문예당간)는 10만권이상 팔리는 등 인기를 누려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출판계는 이 상황이 늦어도 이달말에는 풀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 미술 ]]

사건사고가 터지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미술부문이다.

화랑가는 양도소득세 문제등으로 미뤄뒀던 전시회를 겨우 열자마자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정말 올해는 죽어라 죽어라 한다"며 "고사라도
지내야 할 모양"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웬만한 화랑마다 대형전을 열어놓았는데 개인 기업 할 것없이 일체의
고객이 관람조차 꺼리고 있다는 것.강남의 한 화랑주는 "비자검사건
이후 화랑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정도"라며 한숨 쉬고 있다.

[[ 영화 ]]

비자금사건 이후 극장가에는 주말에도 관객이 들지 않아 울상.

영화관계자들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인데 누가 극장을 찾겠느냐"며
관객공동화현상이 장기화될까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깊이있는 예술영화보다는 폭력물 등
"분풀이용"만을 선택하는 추세.

그런가하면 우노필름이 삼성영상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중인
"돈을 갖고 튀어라"(김상진 감독 우노필름제작)는 전직대통령의
돈세탁과정을 다룸으로써 개봉전부터 화제가 되는 등 예기치 않은
득을 보고 있다.

자신의 휴면계자에 100억원이 입금된 사실을 안 건달이 3억원을
인출했다가 쫓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 음악 ]]

김자경 오페라단이 연말공연 "노래하는 성탄나무"를 협찬기업을 구하지
못해 취소하는 등 최악의 상태.

연말공연을 위해서는 11월초 협찬사를 구해야 하는데 예년에
별 무리없이 후원해주던 곳조차 미루거나 거절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

입장권 판매가 어려운 것은 물론 초대권 관객도 오지 않아 썰렁한
객석으로 인해 연주자들이 민망해하는 형편이다.

기획사들은 여기에 내년선거까지 이어지면 음악계 불황타개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

[[ 연극 ]]

연극가는 비자금파문에 한파까지 겹쳐 한층 쓸쓸한 분위기.

서울연극제와 사랑의 연극잔치가 끝난뒤 연극인들의 관객하락에 대한
체감지수가 높은데다가 비자금사건까지 더해 한결 썰렁한 것.

실제로 극단완자무늬의 "늙은 창녀의 노래"와 한양레퍼터리의
"러브레터" 등 몇작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소극장들이 객석의 3분의1을
못채운채 막을 올리는 실정이다.

다만 엄청난 사건사고나 부정부패사건을 쉽게 망각하는 국민정서를
비판한 극단예군의 "불감증은 병이 아니라구요"(김성노 연출,
뚜레박소극장)는 비자금사건이 확대되는 시점에 막을 올려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 문화부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