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중종때 찬의(정5품)를 지낸 정온의 시신이 4백50여년전 매장될 당시
의 모습 그대로인 미이라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미이라는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금릉리 산18의10 경주 정씨 제안공파 선
산에서 6일 오전 묘지 이장작업을 하던 종친회에 의해 발굴됐다.

정온의 묘소는 이중 목관이 사용돼 연결부위마다 송진이 칠해져 있고 석회
로 덮여 있었는데 외관의 크기가 가로 90cm 세로 2백40cm 두께 12cm이며 내
관은 가로 60cm 세로 2백10cm 두께 10cm 크기로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내관안에 있던 시신은 신장 1백70cm 정도로 얼굴 형태와 상체 및 하체의 뼈
살등이 썩지 않았으며 치아와 상투 수염등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등 매
장될 당시의 모습 거의 그대로였다.

또 시신을 둘러싼 7겹의 옷가지는 물론 시신과 내관벽의 공간을 채워 넣은
20여점의 비단 옷가지와 신발등도 썩지 않았으며 건을 맨 끈도 시신의 목에
그대로 묶여 있는 상태다.

이날 시신이 미이라로 발견된 정온은 성종때인 1474년 이조판서를 지낸 제
안공 정효상(1432~1481)의 2대손으로 중종시절 찬의를 지냈다.

종친회회장 정종택씨(58.서울 강서구 화곡동 143의104)는 "할아버지 시신의
팔목과 손목 관절이 움직이고 살도 아직 탄력을 지니고 있는등 매장될 당시
거의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시 문화원 정동일연구원(30)은 "송진과 창호지 석회 봉분등이 훼손되지
않는등 발견상황으로 미뤄 진공상태가 양호하게 유지돼 미이라가 됐을 가능
성이 높다"며 "수의와 살이 붙어 있지 않고 수염등이 그대로 발견된 점으로
보아 국내에서 발견된 미이라중 가장 양호한 상태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
했다.

정연구원은 "특히 발견상태 등으로 미뤄 고고학적인 가치는 물론 조선조 묘
제연구와 현재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장례기술, 복식연구 등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