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돈세탁방지법을 만들어 돈세탁행위를 근원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그 허점이 드러났다.

금융기관이 다른 사람의 돈인줄 알면서도 제3자가 나타나 실명전환을
요구할때 여기에 응할 수밖에 없어 차명거래는 사실상 허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돈세탁 그 자체를 막기도 힘들다.

금융기관 직원이 돈을 세탁해 주어도 기껏해야 감봉이나 징계등 문책만 할
수 있고 돈세탁을 부탁한 사람은 처벌할 근거조차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검은돈을 차단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세탁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형사처벌을 할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 돈세탁을 막자는 것이 새로운 법제정론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도둑질한 돈과 땀흘려 번 돈을 구별하기 쉽지 않고, 돈세탁방지법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검은돈의 흐름이 차단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기대할 수도
없다.

재경원은 새로운 법제정없이도 현행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돈세탁관련 금융기관직원의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론은 돈세탁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고
재경원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법을 만들든, 기존의 법률해석을 통해 보완을 하든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할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검은돈인지를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금자보호의 중요성을 가볍게 다룰
수도 없다.

돈세탁을 막기 위해 일정액 이상의 대규모 금융거래시 국세청에 보고하고
금융기관이 돈세탁을 하거나 도와주었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는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은행간 예금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예금
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어떤 내용의 돈인가를 따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부정한 돈이 아니라 해도 자기재산이 공개되기를 꺼려하는 우리의
오랜 관습을 법제정으로 고치려 할때 여러가지 마찰이 예상될수 있다.

돈세탁방지법이 없었기 때문에 검은돈이 흐른 것은 아니다.

법제정도 중요하지만 검은돈 그 자체가 거래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런 풍토의 조성없이 돈세탁을 법적으로 봉쇄하면 음성적인 돈세탁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법으로 규정한다 해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그에따라 곧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돈세탁규제법이 시행되고 있고 5,000만파운드 이상을 은행에 예치할 경우
그 출처와 조성경위를 밝히도록 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돈세탁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벌을 주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지하자금 양성화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탈세하는 길도 막아야 한다.

권력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기업의 성공이 보장될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돈세탁방지법 제정과 함께 이런 점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