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호"는 어디로-.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태수총회장의
사법처리까지 거론되는등 한보그룹이 창업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보는 과연 이 위기를 넘길수 있을까.

재계와 금융계에선 "지난 91년 수서사건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한보가
보여준 초고속성장세가 앞으로 둔화될 것"는 시각에서부터 "한보는 이제
끝장났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러나 대세는 역시 "한보그룹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쪽이다.

한보가 과연 어느 선까지 버틸수 있느냐가 관심사일 뿐이다.

한보에 대한 이런 비관적인 시각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해줬다
는 사실뿐아니라 노씨의 비자금가운데 최소 수백억원, 최대 수천억원을
기업확장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보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정부의 세무조사.

정부는 현재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관련기업에 대해 선별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입장을 세워놓고 있다.

따라서 한두개 그룹을 "선별적"으로 고를 경우 한보는 반드시 그안에 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단순히 동화은행을 통해 실명전환한 금액에 그칠지
아니면 한보그룹의 다른 자금조달원에 까지 확대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시범케이스"로 찍힐 경우 세무조사는 모든 자금줄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이 맘잡고 조사한 경우 살아남은 기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한보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정상적인 금융권과의 관계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보그룹은 25개계열사에서 2조원이 넘는 금융기관돈을 쓰고 있다.

인수작업인 한창인 유원건설을 포함할 경우 2조5천억원선에 이른다.

이중 1조원이상은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돈이다.

한보는 당장 아산 철강단지를 조성하는데도 2조5천억원이상의 자금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지금 이시점에서 이런 천문학적인 숫자를 한보에
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까지 주요 자금줄 이었던 사채도 이번 사태의 여파가 가라앉기
전에는 동원하기 힘들 전망이다.

한보의 자금줄은 이미 조여오기 시작했다.

한보그룹은 최근 우성타이어를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박계동의원이 국회에서 "노전대통령의 4천억원대
비자금"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신한은행측에서 이를 확인해주자
곧바로(21일) 증권거래소에 "우성타이어 지분인수를 검토했으나 사업성등
저간여건으로 인해 일절 지분인수를 않기로 했다"는 공시를 냈다.

금융계에선 이를 한보의 자금줄이 어려워지는 첫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정부에서 "기업주만 문제삼고 기업은 살린다"는 방침으로 정회장만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하는 방안도 상정해 볼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보의 자금은 거의 정회장 혼자서 거의 조달해
왔다는게 그룹안팎의 얘기이다.

"한보그룹=정회장"의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따라서 그룹내에서 카리스마적인 위상을 갖고있는 정회장이 없는 한보는
거의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의외의 시각도 없지는 않다.

정회장이 재기불능으로 여겨질 정도로 쓰러진 뒤에도 언제 그랬냐는듯
항상 회생하곤 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는
견해다.

5.6공맨으로 알려진 정회장이 현정부와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 관계라는
점에서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육동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