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은 "한보 미스테리"의 핵심인 만큼 불가사의한
인물로 재계에 알려져 있다.

하급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난 91년 "수서사건"으로 구속
까지 됐지만 석방후 그룹을 다시 일으킨 "괴력의 사업가"이다.

"로비의 귀재"라는 별명에서 알수 있듯이 권력층과 긴밀한 끈을 유지하며
번번히 위기를 모면해온 "행운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특히 점술가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고 2번의 상처, 한번의 이혼, 그리고
지난 8월 24년 연하의 재미교포와 4번째 결혼을 한 것까지 그는 특이한
이력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회장의 실제 개인이력이나 신상과 관련해선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아 "베일에 싸인 인물"로 통한다.

정회장은 지난 80년 한양대 산업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공식 이력서엔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사석에서 "내가 졸업한 학교는 진주의 국민학교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1년 국세청에 들어가 지방 세무서를 돌며 원천징수업무를 담당해온
그는 점술가 백운학씨의 점괘에 따라 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하면서 기업을
시작했다.

이후 76년 세운 한보주택이 설립 3년만에 당시 민간기업의 단일 아파트로는
최대 규모였던 은마아파트(4천4백24가구)건설을 맡을 정도로 사업수완을
발휘해 기업을 일으켰다.

또 최근엔 총 투자규모 4조원 정도의 당진철강공장 설립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회장의 이같은 사업확장 비결은 권력층과의 은밀한 관계가 주배경이라는
설이 정론처럼 돼있다.

역대 어느정권을 막론하고 주요 이권사업에 정회장의 이름은 단골손님으로
거론된 것등도 그렇다.

정회장은 특히 사업상 도움이 필요한 인물을 관리하는데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무공무원 경력과 건설회사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권력층 인사들의
개인재산을 관리해주며 친분을 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수서사건때 국회의원 5명과 청와대 비서관등이 구속된 것은 그의 로비범위
를 반증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정회장은 현재 그룹부회장을 맡고 있는 3남 보근씨에게 경영대권 승계를
넘겨주기로 했다지만 최근까지도 "아직 10년 이상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밝히는등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서사건은 꿈에서라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온 정회장은
그러나 이번 비자금 사건으로 또 한번 악몽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혼을 할때마다 사업의 전기를 맞았다는 정회장은 이번 4번째 결혼이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