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비자금 파문으로 연일 술렁대고 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돈을 준"기업인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재계는 검찰이 기업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경우 <>조사는 하되 경제에 미칠
주름살을 고려해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과 <>반대급부를 기대한 뇌물수수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 몇개 기업을 본보기로 사법처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고 자체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재계는 "기업에 대한 조사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이며 사법처리
를 한다면 대상은 어디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재계는 노 전대통령이 "기업인의 의욕을 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 검찰과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건이 최근 주춤하고 있는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해당 그룹 총수의
소환"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비자금 조달 경위가 나온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기업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 역시 비자금 제공기업이 밝혀지면 세무조사와 세금추징을 강행하겠
다는 입장이어서 재계가 잔뜩 움츠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벌써 "몇몇 기업이 소환조사대상으로 선정됐다"느니 "소환조사
는 하되 처벌은 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수사원칙"이라느니 하는 풍문이 재
계에 그럴듯하게 떠돌고 있다.

아직은 낙관적인 분석이 유력하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연말이고 멀지 않아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연말은 기업으로선 가장 바쁜 시기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느라 자금수요가 집중되고 수출 생산등 업무에도 분
주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당국이 과연 기업의 영업활동을 위축시키고 투자의욕
을 저하시키는 "전면적인 메스"를 가하겠느냐 하는 것이 낙관적 분석의 주
된 근거다.

최근의 국내 경기가 이미 하강국면에 들어서 자칫 비자금파문의 불똥이 30
대 그룹 전부로 튈 경우 정부가 의도하는 경기 연착륙시도가 무위로 끝날지
도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경기에 악영향을 줄 게 뻔한 상
황을 스스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그러나 정계개편을 몰고올지도 모르는 엄청난 파문에 대해 정부당국이
조성경위만을 불문에 붙일 수 있을런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상징적으로라도 몇몇 기업에 대한 "본보기 처벌"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은
이래서 나온다.

이 경우 6공 당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가 조사과정에서 유야무야 됐던
비리사건들이 다시 들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홍구총리가 국회답변과정에서 수서택지 재수사 가능성을 내비쳤고
무기도입과 관련한 거액의 커미션 수수사건이 불거져 나오면 국내 방위산업
관련 업체들이 일차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

<>원전공사와 <>골프장 허가 <>제2이동통신사업등 굵직굵직한 이권사업에
연루됐던 기업들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사가 진행되면 기업비자금 조성과정에서의 세금 탈루등에 대한 처벌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H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시의 통치스타일과 정치자금 수수관행으로 보아
돈을 주지 않은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6공 시절 대형이
권사업에 연관됐거나 유난히 고속성장한 그룹들이 1차적으로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와관련 재계에선 대형이권사업과 관련된 S.H.D.T등 일부기업과 지역연고
를 배경으로 급성장한 C.H 그룹등이 검찰 수사의 표적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비자금 파문이 어떤 형식으로 정리되건 앞으로 기업
과 정부의 정상적인 관계가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만은 틀림없을 것으
로 입을 모으고 있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9일자).